곤조투자가 개인 아카이브: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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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개인투자 자료 아카이브 채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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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 #이와세 #일본 #여행

호텔 예약 실패로 본의 아니게 이와세 지역 여행 중...

메이지 시대 목조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파인다이닝 식당도 많다.

메이지 시대 첫 개장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호쿠리쿠 은행이 인상적이다.
곤조투자가 개인 아카이브:일기장
2024년 4월 17일 수요일 #데일리 #일본 #여행 #이시카와현 #호쿠리쿠 #가나자와 2일차: 가나자와 소감 1. 가나자와시의 인구는 약 46만 명으로, 이시카와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호쿠리쿠 지방에서는 가장 큰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2. 지금은 허접한 도시처럼 보이지만 과거 가나자와의 위상은 어마어마했다. 과거 에도막부 시절에는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도시였다. 그러나 산업의 이동으로 호쿠리쿠 지역은 급격히 몰락하게 되었다. 일본의 러…
2024년 4월 18일 목요일
#데일리

#일본 #여행 #이시카와현 #호쿠리쿠 #도야마 #이와세

3일차: 도야마+이와세 소감

1. 도야마시는 도야마현의 현청지로 인구는 약 41만이며 '다테야마 알펜루트'를 가기 위해 자주 들리는 지역이다. 도야마시는 한국의 광주 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도야마시는 몰라도 아마 '이타이 이타이'병은 알 것이다. 이 병이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그만큼 공업도 발전했던 도시다.

2. 그러나 지금은 인구 41만 치고는 굉장히 유령도시 같은 느낌이다. 왜 이렇게 사람이 텅텅 비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도야마성을 봐도 사실 그다지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충 과거 항만과 풍부한 농업을 기반으로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인 한국의 '군산'이나 '나주'의 느낌이 난다. 

3. 도야마시는 관광과 공예에 꽤나 진심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스시가 매우 발달했으며, 유리공예에도 진심이어서 많은 유리 공예가들이 도야마에 거주하고 있고 '도야마 유리 미술관'이 유명하다.

4. 도야마의 역사 중 '잇코 잇키'의 역사가 있다.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의 최대 난제였다고 하며 일명 일본판 '황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신란'이라는 승려가 발단인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누구든지 '나무아미타불'만 외우면 구제된다고 설파하였다. 일본판 '장각', '궁예' , '무슬림형제단'이며 거의 이들에 버금가는 말빨을 소유하고 있었다.

5. 도야마의 '잇코 잇키'는 에치고의 용 (바로 옆 동네 살고 있었음) '우에스기 켄신'이 토벌하게 되고 이곳의 지배자가 된다. 참고로 농민봉기라는 것은 어지간하면 그래도 먹고 살만한 곳에서 일어난다.

6. 그래서 도야마 또한 산해진미가 모이는 식량 공급처였고 전국시대에 많은 무장들이 노리는 지역이었다.

7. 그러다가 '마에다'가문이 이곳의 번주가 되었고 이때부터 도야마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도야마를 무역의 항구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상업을 장려했다. 과거에는 일본 제일의 제약 도시였기도 하단다.

8. 도야마 위로 가면 이와세라는 동네가 있다. 여기가 바로 도야마의 '코'에 해당하는 항구마을이다.

9. 지금은 매우 매우 조용한 마을이지만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규모에 비해 꽤 많다. 미식가들은 다 아는 동네라고 한다.

10. 오늘은 이곳의 '모리' 가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기를 끝낸다.

11. 이와세 지역에는 모리가문 주택이 있다. 현재는 일본 중요 문화재이다. (국보) 지금은 지진 여파로 보수 중에 있어서 폐쇄 중이다. 대강 150년 정도 된 목조 주택이다. 사실 일본에는 역사, 예술적으로 훌륭한 주택을 국보로 지정하는 편이다. (우리나라도 상주나 안동 같은 곳에 가면 민속 문화재로 지정해둔 고택들이 있다.)

12. 모리 가문의 집은 도야마현 전체에서 가장 심미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모리'라는 사람은 무엇을 했을까?

13. 이 가문은 예부터 해운업에 종사하면서 큰 유통업자가 되었다. 그러나 마냥 한곳에 머물며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 시대가 되자 이 가문은 금융업에 뛰어들어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미국으로 치면 작년에 실리콘밸리 은행을 인수했던 미국 시골 은행 퍼스트시티즌스 느낌이랄까? (좀 과한 비유 같기도 하다.)

14. 어쨌든 해운업은 금융업으로 변모하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보험과 주식이 어디서 나왔는 지 생각해 보면... 모리 가문도 그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잘 변화한 것이다. 

15. 그리고 자기 고향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고 한다. (케파 증설 ㄷㄷ) 통도 커서 잔치도 많이 열었다고... 그래서 지역 주민들도 매우 존경했고 지금도 이와세 주민들은 존경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바다의 사나이들의 마을인지라 의리도 강하고 긍지도 높다고 한다. '이와세 히키야마'라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된 축제가 있다.

16. 아무튼 그래서 파인다이닝이 많은 이유가 그때 투자된 양조장 같은 곳들이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되었다. 

17. 첫날 보았던 사바에시의 '마쓰나가'나 가나자와의 '나카무라' , 그리고 오늘 '모리'까지 일본은 참 기업가를 존경하는 것 같다...

18. 아무튼 예정에도 없던 동네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19. 도야마 관광 최대 시즌인지라 외곽지역에 까지 와서 겨우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내일은 렌트카도 빌려야하는데 왜 없는걸까...ㅠㅠ 이것은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기가 그만큼 생각보다 열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