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TECHTRE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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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봤지만...
저 시기를 고려했을때 굉장히 앞서간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경쟁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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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금리를 크게 더 올리면 미국 주택 경기가 꺾일까?

다음은 1956년부터 2022년 2분기까지 미국 주택 수급을 나타내는 자가주택 및 임대주택 공실률과, 기준금리에 및 주택 실거래 가격 상승률을 나타낸 자료이다.

이 자료를 토대로 판단할 때 미국이 금리를 더 가파르게 올리면 미국의 주택 경기가 꺾일까?

2006년 금리를 크게 올린 후 주택 경기가 꺾인 것은 과도한 주택 공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공급 과잉 국면에서 금리를 올리면 주택 경기는 꺾이면서 침체한다.

반면, 1970년대는 주택공급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준 금리를 10%를 넘어 18% 수준까지 올렸지만 금리와 함께 주택가격이 오른다.

그렇다면 2022년 현재 자가주택 공실률과 임대주택 공실률을 토대로한 주택 수급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주택 경기가 꺾일까? 오르는 금리와 함께 주택 부족을 충당할 주택 경기 활황 국면이 계속될까?

70여년에 가까운 현존하는 가장 긴 공식적인 통계 시계열 자료로, 금리, 주택가격, 공실률로 나타낸 주택 수급을 통해 주택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주식, 부동산, 채권 등 모든 금융시장의 흐름을 읽는데 중요한 자료로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 경제 관련 서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내용이다.

#김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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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기념으로 잘 알려진 지도 하나 올립니다.

현재 사용되는 전 세계의 문자들은 딱 세 가지 계통으로 나뉩니다 : 이집트 기원 문자, 중국 갑골문자 기원 문자, 그리고 한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체계는 꽤 많습니다. 당장 키릴문자만 해도 누가 만들었는지 기록이 남아 있고, 태국 문자는 한글처럼 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인 람캄행이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글과 다른 인위적 문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한글은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그 어떤 문자와도 상관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한글을 제외한 모든 인공적인 문자는 이미 그 문화권에 잘 알려져 있던 문자들을 손질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다들 잘 알고 있지만, 한글은 기존의 문자체계를 참고한 것이 아니라, 해당 발음을 하기 위한 발성기관의 모습을 극도로 단순화시켜 만들었습니다. 미니멀리즘 관점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이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입니다. 지금 기준에서도 말이죠. 제가 본 어느 외국 언어 학자의 책에서는, 한글을 지적 유희의 가장 높은 단계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칭 “민족 사학자”들이 환단고기 이야기 하면서 가림토 문자 어쩌고 하는 소리는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훈민정음에 정말 자세하게 창제 원리가 기재되어 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근거도 없는 위서 내용을 주장하는 건 한글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다들 갖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 대단함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한글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문자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세종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Pilsu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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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보다 똑똑한 사람--

한 sns를 보다보니 너무 재미있는 영어 영상이 있어 옮겨봄.

아인슈타인이 비행기를 탔는데 한 인도사람이 옆에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심심해서 이런 게임을 제안한다.
"내가 질문을 해서 당신이 못맞추면 5불을 내게 주고, 당신이 질문해서 내가 못맞추면 500불을 주겠다"

그 인도인은 좋다고 하며 아인슈타인에게 먼저 질문을 해보라 한다.
아인슈타인은 "지구부터 달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라고 질문한다. 인도인은 모르겠다며 아인슈타인에게 5불을 준다.

이제 인도인은 차례. 그는 "세 다리로 언덕에 오른후 네 다리로 내려오는것은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한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해도 맞출수 없었다. 이에 그에게 500달라를 준다.

아인슈타인은 너무 궁금해서 그에게 묻는다. "그 질문의 답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러자 그 인도인은 아인슈타인에게 5달라를 주었다.

#신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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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이 점점 니프티 피프티 초강세장 이후 1,2차 오일쇼크를 거치고 폴 볼커가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한 1970년대말 1980년대 초와 비슷해 지고 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전하고 닉슨이 금태환 중지 선언을 한후, 1,2차 오일쇼크가 터지고,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미국 폴 볼커가 기준금리를 10%에서 21%까지 인상했다.

미국의 전략적 오판(베트남 전쟁)과 잘못된 재정정책(현재 시세대로 환산하면 6500억 달러의 전쟁 비용 정부 지출 및 대규모 사회복지정책)이후 닉슨의 금태환 정지는 급격한 달러 약세를 촉발하였고, OPEC은 그 달러환차손을 커버하고자 상응하는만큼 유가를 급격하게 인상하였다. 이에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십년 동안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미국의 패권은 약화되었다. 이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흐름이 전개되었다.

이번에도 미국의 팬데믹 대응에서 트럼프 0.7조 달러, 바이든 1.9조 달러의 재정 지출이라는 잘못된 재정 정책으로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촉발되었고, 역시 러시아, 중국, OPEC 등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우러 전쟁은 미중 전쟁의 전초전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푸틴이 우러 전쟁을 마치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총동원령으로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러시아 연방이 해체될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미국과 글로벌 경제도 엄청난 희생을 치뤄야 하겠다. 그런데 푸틴이 여기서 멈추면 어차피 실각하고 암살 당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냥 갈데까지 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

먼저 바이든이 팬데믹 대응에서 전략적 오판과 실수(과도한 재정지출)를 했고, 다음으로 푸틴이 오판과 실수를 했다. 푸틴은 공급 능력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에서 엄청난 재정지출로 총수요를 팽창시켜 놨으니,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해도 미국이 경제제재를 하면 미친 듯한 인플레이션이 일어 날 것이고 그러면 전쟁에 강하게 개입하지 못할 것이니 6개월이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오판한 것 같다.

정말 너무 어려운 매크로 방정식이다.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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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똑똑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족한점

일반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들이 사회에서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리며 산다. 하지만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다. 특히 사회생활은 많이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과도 교류하며 그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아야 함에도 그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똑똑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 중에 쓸데없이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며 타인의 잘못과 부족함을 지적하여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가 그 말을 듣고 이해하고 태도를 바꿀 것 같지 않으면 혹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지적을 해주어야할 의무가 본인에게 있는 상황이 아니면 타인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 낫다. 괜히 기분만 상하고 관계만 나빠진다.

적이라서 상대의 기세를 꺾어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과 별 관계가 없는 사람, 혹은 자신과 같은 편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필요는 없다. 자신과 가깝고 상대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가까이에서 비공개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있거나 좋은 점에 대해서만 가볍게 칭찬해주는 것이 서로 기분이 좋고 스스로의 평판관리에도 좋다.

공론의 장에서 남의 잘못과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시원하게 조롱하는 이들이 자극적이고 이들의 이야기를 언론이 자주 소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들은 조직에 들어가면 분란을 일으키고 같이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우고 겸손하나 너무 우유부단한 경우가 많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도 실패가 두려워 우유부단하고 잘못된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할 의무가 있는 상황에서도 개인적인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에 빌붙어 자리를 얻으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위기상황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에 앉히면 좋지 않다. 사람들을 설득하지도 못하고 추진력이 없다. 정책연구나 자문을 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사회를 바꾸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람들을 자신의 뜻을 세상에 이야기하고 일반인들과 조직원들을 설득하여야 하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려운 개념으로 일반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학자로서 학자들, 지식인들과만 교류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면 그렇게 자신의 뜻을 표현해도 좋겠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고 자신의 편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알기 쉽게 중요한 부분의 핵심만을 가능한 재미있게 말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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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투자하는 사람들은 인플레 시장을 겪어본 적이 없다.

#김평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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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가족 등 아주 가까운 지인이나 주양육자로부터 정서적 학대에 가까운 가스라이팅을 오랫동안 당하거나 그 가족의 무기력한 태도를 고스란히 체화한 경우를 의미하는데, 아무래도 특정인의 삶 전체에서 이런 모습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습된 무기력은 그 사람이 항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 주로 발현된다.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학습된 무기력이 발현되는 시점 또는 상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의 진도가 뭔가 느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혹은 조금만 나의 생각과 다른 의견이 나왔을 때 과도하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애초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지만 오랜 기간 학습되어온 무기력함이 원인일 수도 있다.

무기력은 사람을 자꾸 우울로 끌어들이고, 수동 공격 혹은 방어적인 태도를 과도하게 부추기고, 제대로 된 사고를 못하게 해서 자포자기로 이끌게 된다. 능동적인 시도 끝의 실패는 성장을 가져오지만 무기력의 반복은 삶을 시궁창으로 몰아간다.

무언가 답답하고 해법이 없어 보일 때, 혹은 자신의 모습과 행동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 때 최선은 잠시 멈춰서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기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돌아보는 것이다. 정도가 너무 심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명상에서 바디 스캔 등을 통해 스스로의 몸을 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듯 일과 생활에서도 스스로의 마음 속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회복시켜준다.

#이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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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TECHTREE/2.0
https://m.blog.naver.com/ward134/222896707063
한은 빅스텝ㅠ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텨서 생존하는걸 목표로 합시다
한글의 기원

그래도 아직은 한글날 연휴니깐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아주 늦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한글의 독자성-독창성에 대한 어떤 신념 같은 것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다소 불쾌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한글은 고대 이집트 문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흐흐흐,

저는 인간의 창조성이라는 것이 무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상황들의 경우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죠.

한글의 형태 기원에 관한 가설 중에서는 한글이 신체의 조음기관 모양을 따라서 만든 글자라는 설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과는 다르게 한글이(특히 자음 체계가)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죠. 이른바 '파스파 문자 영향설'이 그 가설입니다.

파스파 문자는 서기 13세기, 원나라 시대 때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아 승려였던 파스파가 티벳 문자를 바탕으로 발명한 문자체계입니다. 당시 원나라는 '세계국가'를 지향하고 있었고, 전 세계의 여러 문자체계들 가운데 표준이 될 만한 문자가 필요했었죠.

국내에서는 조음기관 모방설이 주류 학설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에 반하여 해외의 관련 학계에서는 파스파 문자 영향설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검색을 해보니깐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파스파 문자와 관련한 연구는 이뤄지고 있는 듯 하고요.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는 가설인지 해당 분야의 문외한인 저로서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글을 고대 이집트 문자와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파스파 문자 영향설'을 지지합니다. 크크크,

고대 이집트 문자는 기원전 3500년 부터 초기 형태가 등장을 하고, 기원전 3000년 무렵에 되면 완성 단계에 이른 문자체계로 확인됩니다. 그리고 이 문자체계는 기원전 1800년 무렵부터 시나이 반도 지역에서 '고 시나이 문자 Proto-Sinaitic'라는 문자체계로 변형-변용됩니다.

고 시나이 문자들은 세라비트 엘-카딤 같은 이집트의 광산 유적이 있는 곳에서 주로 발견이 되었죠. 일반적으로 이 문자는 이집트인들과 오래도록 관계를 맺었던, 혹은 이집트인들이 개발하던 광산에서 노동자로 종사하던 샘어 사용자들이 이집트 문자들 가운데 몇몇 표음문자들을 차용해서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라고 이야기 됩니다.

그리고 이 고 시나이 문자는 레반트 지역으로 퍼져나가 '고 페니키아 문자 Proto-Phoenician'의 기원이 되었고, 고 페니키아 문자는 '페니키아 알파벳'의 초기형태라고 할 수 있는 문자체계죠. 이후,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페니키아 알파벳은 지중해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 서양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고요. 또한 페니키아 알파벳은 아람 문자 Aramaic의 단계에서는 동쪽으로 전래가 되어 다양한 아시아 문자체계들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깐, 한글의 형성과 관련해서 '파스파 문자 영향설'을 전제로 삼는다면,

고대 이집트 문자(상형문자) -> 고 시나이 문자 -> 페니키아 문자(페니키아 알파벳) -> 아람 알파벳 -> 브라흐미 문자 -> 굽타 문자 -> 티베트 문자 -> 파스파 문자 -> 한글

이런 계보를 만들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글과 고대 이집트 문자를 연결지을 수 있게 되니, 저로서는 이 가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흐흐흐, 더불어서, 이 계보는 조선 전기의 문화가 갖고 있는 국제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하죠.

만약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한글로 이어지는 이 계보가 맞다고 한다면 저는 이 계보의 시작과 끝에 위치한 두 문자체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문해력을 갖고 있는 셈이니 왠지 뿌듯한 기분도 느껴집니다. 흐흐,

이처럼 모든 것은 고대 이집트로 통하죠. 고대 이집트 문자 만세! 한글 만세!

#Min-SooKw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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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우수함과 위대함에 대해 여러글들은 읽어봤지만.. 이런 글은 또 처음이네요.

그래도 의견의 다양성을 알고 있는건 중요하니 참고해보겠습니다.
LIFE-TECHTREE/2.0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가족 등 아주 가까운 지인이나 주양육자로부터 정서적 학대에 가까운 가스라이팅을 오랫동안 당하거나 그 가족의 무기력한 태도를 고스란히 체화한 경우를 의미하는데, 아무래도 특정인의 삶 전체에서 이런 모습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습된 무기력은 그 사람이 항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 주로 발현된다.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학습된 무기력이 발현되는 시점 또는 상황을 가지고 있을…
아까 개인 차원에서 겪는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글을 썼는데, 페친 분께서 조직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주셨네요. 그래서 조직 차원에서 학습된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를 약간만 해보겠습니다. (제대로 다루려면 저도 생각 정리가 여러모로 필요한 매우 복잡한 문제거든요. 휴일에 고생하고 싶지 않으니 여기서는 간단간단하게 ㅋ)

조직은 구멍가게 같은 스타트업이건 한 나라의 정부건 절대로 그 조직의 최고 책임자를 넘어서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대표자가 자기 역량을 넘는 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자신의 사고를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용인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대표자가 ‘go / no go’ 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고의 ‘패턴’이 존재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속은 이 ‘선호’가 이성적 판단보다 보통 우선합니다. ‘어떤 결정이 우리 사업에 유리하다’는 생각이 먼저 와서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저 아이디어가 맘에 드는 걸’ 이라고 생각해서 ‘그럼 저 결정이 우리에게 유리할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정책을 지지해서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을 지지하다보니 그의 정책이 옳은 것처럼 느낀다는 거죠.

기업체의 윗사람도 똑같습니다. 자기의 취향에 맞는 보고는 ‘옳고 효과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에 안드는 아이디어는 ‘틀리고 근거없는’ 아이디어라고 느끼는 것이죠. 당연히 이 선호, 그리고 그에 따른 결정은 일정한 패턴을 보입니다. 때문에 부하 직원들에게 ‘이런 종류의 아이디어는 통과되고 저런 종류의 아이디어는 무조건 까이고’ 라는 인식이 생겨납니다. 어느 순간부터 직원들은 굳이 통과도 안되고 욕만 먹을 아이디어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게 됩니다. 욕먹고 까이는데 누가 나서겠어요. 이게 6개월, 1년이 되면 회사에서는 완연한 법칙이 생겨납니다. 조직에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통과되고 욕먹지 않을, 좀 더 부정적으로는 윗사람 입맛에 맞는 아이디어만 보고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직원들에게 무기력이 학습됩니다.
“야, 그런 거 보고해봐야 대표가 이해도 못하고 욕만 먹어. 뭐하러 준비하냐?’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오죠.

해결책을 알면서도 이를 논의, 실행하려는 것 자체를 사전에 포기해버리고, 어차피 안될 것이라 사전에 지레짐작하고, 이 부정적인 전망에 맞춰서 조직원들이 행동하고, 그래서 실제로 조직에서 해결책은 결코 실행될 수 없이 되는 것이 ‘조직적 무기력이 학습된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최상층 경영진의 자기 반성이고, 자기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회사에서는 맨날 위기를 강조하고, 혁신을 부르짖고, 신사업 아이디어를 백방으로 찾지만 잘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대표자들이 정작 자기는 위기감을 느껴서 스스로 바꿔보려고 하지 않고, 남들보고만 혁신하라고 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디어는 ‘야, 어디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있냐?’ 같은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직원들은 이를 대단히 잘 ‘내면화’해서 철저하게 무기력해지는 걸로 자기를 보호합니다.

아이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을 경우 부모 치료가 병행되는 것처럼 조직이 성장하려면 경영진의 자기 반성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조직의 내면화된 무기력을 깰 수 없습니다.

#이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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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가>

1. 야구 선수의 타율을 생각해보자. 한 시즌 동안 매 경기에서 4타수 1안타(평균 타율 0.250)를 기록하면 평균쯤 되는 선수로 취급 받는다.

2. 그런데 이 선수가 매 경기 3타수 1안타(평균 타율 0.333)로 타율을 올리면 이 선수는 올스타 선수가 된다.

3. 그리고 이 선수가 이 타율을 선수 생활 내내 유지하면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4. (하지만 수학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 셋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선수의 위상이 달라지려면 12타수 당 1안타만 더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타율 0.333(12타수 4안타)과 타율 0.250(12타수 3안타)는 12타수 기준으로 안타 1개 차이다)

5. (다만) 이렇게 꾸준한 개선을 이루어내려면 기술과 연습이 필요하다. 즉, 프로세스가 있어야 한다.

6. 다시 말해, 좀 더 넓은 선택지를 확보하고, 확증 편향을 피해야 하며, 중요한 준비를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 칩 히스 외, <후회 없음> 중

#Somewon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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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등교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유니세프 전시회에 갔다가 벽면 가득 대형 프린트로 전시된 이 사진을 보고 너무 반가워 함박 웃음을 지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진작가인 김녕만 선생님의 작품 '강제등교'다.

. 전시에는 그저 사진 제목만 덜렁 붙어있었지만 이 사진에는 재밌는 뒷얘기도 있다. 전북 고창 출신인 김녕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딱히 직업을 찾지 못한 '백수'였다. 그런데 1969년 고창군청에서 동네의 자랑거리인 고창읍성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도대체 이 성이 언제 지어졌는지 아는 사람?'을 찾는 공모전을 열었다. 남는 건 시간뿐이었던 김녕만은 읍성을 샅샅이 뒤지면서 희미한 한자들을 찾았는데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빌린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들고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올라가 무작정 고서의 기록들 중에 비슷한 글자가 있는지 뒤지는 식으로 찾아서 단종 원년인 1453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 이 일로 사진의 힘(?)을 알게 된 김녕만은 받은 상금을 몽땅 들고 서울로 올라가 사진학원에서 6개월 단기속성으로 사진을 배운다. 그리고 다시 이듬해 고창군청 공보실에 사진담당으로 취직한다. 이쯤되면 두 개의 팔이 서로를 그리고 있는 에셔의 그림이 연상될 정도의 자기 순환이 아닌가.

. 이 순환고리를 끊은 것은 그 자신이었다. 사진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어렵게 구한 군청공무원 자리를 내놓고 당시로서는-지금 기준으로도- 매우 늦은 스물 넷의 나이에 서라벌 예술대학 사진과에 입학한다. 당시 사진기는 비싼 물건이라 군청 사진기를 반납하고 나왔으니 명색이 경력 사진가지만 카메라 하나도 없고 심지어 월급이 끊겼으니 숙식과 등록금을 해결할 길도 없이 오로지 그간 모은 돈으로 입학금만 간신히 내고 무작정 상경한 것이었다.

. 그의 꿈은 신문사진기자, 그것도 콕 집어서 동아일보 사진기자였다. 이유도 단순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동아일보 신문지국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지 겨우 2년 째였던 1974년 동아일보사에서 여는 '동아사진콘테스트'에 사진을 내보기로 한다. 이 콘테스트는 당시 정부 주관의 '국전'과 쌍벽을 이루는, 사진가들에게는 최고의 경연장이었다. 하지만 김녕만은 고창에서도 주로 동네 사람들, 시골 마을의 모습들을 기록하는 사진을 찍었고 그 자신은 지금도 고학을 하느라 아침 저녁으로 산동네를 걸어 오르내리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뭔가 대단히 예술적이고 거창한 사진을 찍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매일 보는 주변의 모습을 담아 출품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그가 처음으로 제출한 사진이 바로 이 '강제 등교'다.

. 겨우 대학 2학년, 완전 초짜의 사진이었지만 이 사진에 담긴 따뜻하고 진솔한 시선이 인정되었는지 그는 이 첫 사진으로 곧장 입상하여 '등단'하게 되었다. 입상자들은 동아일보 사진동우회의 회원자격을 얻게 되는데 김녕만은 이것이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77, 78년 연달아 사진동우회원전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결국 78년 최우수상 시상식장에서 동아일보에 특채된다. 그러니까 이 사진 '강제등교'는 사진작가 김녕만이 탄생하도록 만들어준 '출세작'인 셈.

. 다시 사진으로 돌아와보자. 아이의 등에 멘 가방이 빤딱빤딱한 걸로 보아 가방을 산지 얼마 안된 국민학교 신입생인 모양이다.(쓰리세븐 가방이 아닐까? 가방 앞 그림은 마징가제트?) 새 옷, 새 바지, 새 신발까지 학교 간다고 아주 집에서 큰맘먹고 세트로 뽑아준 모양새다.(이때는 왜 애들까지 저렇게 아저씨 잠바를 입혔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목까지 지퍼를 잔뜩 끌어올려서.. ) 잠바 오른쪽에는 리본까지 달린 신입생 이름표가 팔랑거리고 있다.

. 하지만 그건 부모님 마음이고, 골목에서 맨날 구슬치기, 딱지치기 하고 놀던 애가 갑자기 학교에 가서 책상에 붙잡혀 앉아 하루 종일 공부를 하라고 하니 당연히 가기 싫지. 안간다고 우왱우왱 거리는 아이가 실내화가 담긴 신발주머니까지 내팽개치고 버티자 엄마는 본인 손에 신발주머니를 챙겨들고, 아이가 손을 빼지 못하도록 손목을 고리잡고 끌고가는 중이다. 동생을 포대기에 들쳐업고 쓰레빠가 아닌 구두까지 챙겨신은 모양이 이대로 학교까지 아이를 끌고 갈 기세다. '시려~ 안가~ 안가끄야!~'를 외치는 아이의 빠진 앞니가 훤히 보이는 가운데

. 이 사진의 압권은 인물들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포대기의 둘째 표정이다. 나 저 마음 뭔지 안다. 나도 둘째거든. 형의 재앙이 커질수록 나는 거기서 한발 물러나 있다는 것이 가일층 행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거기서 즐겁게 웃으면 한데 묶여서 야단맞는다는 눈치도 챙길만한 나이. 그저 '저는, 이 사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평화를 원해요. 어.. 사진기가 니콘인가요?'하는 표정으로 딴청부리며 따뜻하고 편안한 어머니의 등에 찰싹 붙어있다.

. 하지만 잘 보면 쟤도 포대기 신세질 나이는 조금 지나보인다. 학교 안간다고 강짜부리는 큰애를 끌고 가려니 둘째를 집에 혼자 둘수도 없고 그렇다고 빨리 걷지도 못하는 애까지 양손에 붙들고 가려니 등교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한놈은 등에 묶고 한놈은 손목을 묶어 '하드캐리' 하시는 중.

. 저런 어머니들의 '강제 등교'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득 집이 어려우니 공고에 가겠다는 나의 말에 밥상을 뒤엎었던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고.. 오히려 우리집은 형은 한없이 착한 모범생이었고 사고뭉치인 내가 저렇게 어머니 손에 손목을 붙잡혀 무던히도 끌려다녔었는데...

. 이따가 어머니께 전화라도 한번 드려봐야겠다.

* 김녕만 작가 관련 내용 일부는 열화당 사진문고의 '김녕만'을 참고했습니다.

#KwakHa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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