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하는 학생들을 종종 겪는다.
나는 그다지 인문학적인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 첫인상도 컴공과 박사님 같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 글쓰기라는 것이 지닌 자기현시적 가치라든가 인간 본연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함이라든가 인격의 도야를 위해서라든가 자기를 온전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 뭐 이런 좋은 이야기는 안 해준다. 나도 글 써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나는 내가 인성 딱히 좋은지 잘 모르겠거든. 그렇다고 남을 잘 이해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안하면 3, 4년 뒤에 존나 후회해요. 그런데 3, 4년 뒤에 막상 그때 가서 하려면 바로 안 늘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미리 해둬야죠.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취준생들을 여럿 만났다. 개인적으로 봐준 친구들도 있고, 개중에는 취업에 성공해서 - 그게 내 덕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 지금껏 잘 먹고 잘 사는 애들도 있다. 개중에 어떤 놈은 취업 성공해서 제가 형님 꼭 은혜 갚겠습니다 광광 이래놓고서는 밥 한번을 사기는커녕 지 결혼식에 청첩장 하나 안 보내더라.
여튼, 자소서 쓰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 양반들이 글쓰기 자체를 못해서 힘들어하는 건 아니다. 콘텐츠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거지. 주어진 항목에 맞춰서 뭔가 쓰려면 자기 삶의 경험 중 일부를 끌어와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써야 하는데, 그게 갑자기 찾는다고 찾아지나. 평소 자기 일상에 대해 기록해두고 정리해둔 '포트폴리오'가 없으면 어느날 갑자기 필요에 의해서 찾아보려고 열심히 머리 속을 뒤적여봐도 그럴싸한 게 안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 뭐라도 기록해두고 남겨놔야 나중에 필요할 때 바로바로 찾아서 쓸 수 있는 풀이 생긴다. 매일 그럴싸한 글을 쓸 필요는 없으니, 내가 뭘 했고, 무슨 생각이 들었고, 뭘 느꼈는지 정도만이라도 몇 줄의 문장으로 남겨두면 그게 다 콘텐츠가 된다. 굳이 글로 안 써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천만에. 인간의 두뇌란 그렇게 간편한 기관이 아니다. 글이라는 건 일종의 이정표다. 내 삶의 특정 지점에 이정표를 박아놔야 나중에 그 이정표 확인해보고 거기가 어딘 줄 기억해내는 거지, 이정표도 없이 내가 걸어온 길이니 기억하려니 하고 되짚어가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라고 해봐야 대학교 1학년한테는 귓등으로도 안들어오지. 사실 이래서 글쓰기는 한 학기 강의 짜놓고 수십명씩 한 강의실 몰아넣어서 이수하게 할 게 아니라, 지도교수 정해놓고 소그룹으로 4년 8학기 내내 읽고 쓰고 돌려읽고 돌려쓰게 만들어놔야 의미가 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그런 식으로 계속 쓰게 읽게 만들고 그걸 모아두게 하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인간이 문자를 괜히 발명한 게 아니다. 수천년에 걸친 노하우라서 그냥 앞뒤 생각 않고 받아들인 채 살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문자만큼 위대한 발명도 별로 없다. 그 좋은 도구 손에 쥐어줬으면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왜 넋놓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선생님 글쓰기가 힘들어요 징징징 이러니. 좀 써. 안늘어도 되니까 좀 써서 갈무리해놔. 나중에 다 써먹을 날 생겨.
박성호
나는 그다지 인문학적인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 첫인상도 컴공과 박사님 같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 글쓰기라는 것이 지닌 자기현시적 가치라든가 인간 본연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함이라든가 인격의 도야를 위해서라든가 자기를 온전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 뭐 이런 좋은 이야기는 안 해준다. 나도 글 써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나는 내가 인성 딱히 좋은지 잘 모르겠거든. 그렇다고 남을 잘 이해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안하면 3, 4년 뒤에 존나 후회해요. 그런데 3, 4년 뒤에 막상 그때 가서 하려면 바로 안 늘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미리 해둬야죠.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취준생들을 여럿 만났다. 개인적으로 봐준 친구들도 있고, 개중에는 취업에 성공해서 - 그게 내 덕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 지금껏 잘 먹고 잘 사는 애들도 있다. 개중에 어떤 놈은 취업 성공해서 제가 형님 꼭 은혜 갚겠습니다 광광 이래놓고서는 밥 한번을 사기는커녕 지 결혼식에 청첩장 하나 안 보내더라.
여튼, 자소서 쓰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 양반들이 글쓰기 자체를 못해서 힘들어하는 건 아니다. 콘텐츠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거지. 주어진 항목에 맞춰서 뭔가 쓰려면 자기 삶의 경험 중 일부를 끌어와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써야 하는데, 그게 갑자기 찾는다고 찾아지나. 평소 자기 일상에 대해 기록해두고 정리해둔 '포트폴리오'가 없으면 어느날 갑자기 필요에 의해서 찾아보려고 열심히 머리 속을 뒤적여봐도 그럴싸한 게 안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 뭐라도 기록해두고 남겨놔야 나중에 필요할 때 바로바로 찾아서 쓸 수 있는 풀이 생긴다. 매일 그럴싸한 글을 쓸 필요는 없으니, 내가 뭘 했고, 무슨 생각이 들었고, 뭘 느꼈는지 정도만이라도 몇 줄의 문장으로 남겨두면 그게 다 콘텐츠가 된다. 굳이 글로 안 써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천만에. 인간의 두뇌란 그렇게 간편한 기관이 아니다. 글이라는 건 일종의 이정표다. 내 삶의 특정 지점에 이정표를 박아놔야 나중에 그 이정표 확인해보고 거기가 어딘 줄 기억해내는 거지, 이정표도 없이 내가 걸어온 길이니 기억하려니 하고 되짚어가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라고 해봐야 대학교 1학년한테는 귓등으로도 안들어오지. 사실 이래서 글쓰기는 한 학기 강의 짜놓고 수십명씩 한 강의실 몰아넣어서 이수하게 할 게 아니라, 지도교수 정해놓고 소그룹으로 4년 8학기 내내 읽고 쓰고 돌려읽고 돌려쓰게 만들어놔야 의미가 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그런 식으로 계속 쓰게 읽게 만들고 그걸 모아두게 하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인간이 문자를 괜히 발명한 게 아니다. 수천년에 걸친 노하우라서 그냥 앞뒤 생각 않고 받아들인 채 살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문자만큼 위대한 발명도 별로 없다. 그 좋은 도구 손에 쥐어줬으면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왜 넋놓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선생님 글쓰기가 힘들어요 징징징 이러니. 좀 써. 안늘어도 되니까 좀 써서 갈무리해놔. 나중에 다 써먹을 날 생겨.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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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세계주가지수.
다우 세계주가지수는 전세계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가총액이 큰 미국 대형주지수의 거동을 대표한다.
이미 예고한 대로 40개월 주기의 키친 사이클 천정에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무작위한 변동 같지만 주기와 가격의 변동 구조의 규칙을 따르는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 지수의 주가의 바닥은 어디쯤이 될까?
김철상
다우 세계주가지수는 전세계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가총액이 큰 미국 대형주지수의 거동을 대표한다.
이미 예고한 대로 40개월 주기의 키친 사이클 천정에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무작위한 변동 같지만 주기와 가격의 변동 구조의 규칙을 따르는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 지수의 주가의 바닥은 어디쯤이 될까?
김철상
👍1
일론은 왜 공론장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을까
- 태도를 바꾼 이유가 사실은 더 무서운 법입니다 -
Financial Times 에서 어제부터 Future of Car 행사를 진행 하고 있는데, 자동차의 미래에 대한 행사다 보니 당연히 테슬라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를 초청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FT는 일론과 거의 1시간 10분 가량 긴 인터뷰를 라이브로 진행했는데, 물론 테슬라에 대한 일론의 이야기도 중요했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은 그의 트위터 인수 및 경영 방침에 관한 것이어서 FT 역시 일론과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여기서 일론이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인데, 그 요지는 바로 "공론장에서 일부 발언은 당연히 차단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정을 영구 정지하는 방식으로 쫓아내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라는 것이었다. 사실 트럼프의 계정 복구에 촉각을 기울이던 투자자들에게는 뒷 말이 더 중요할 수 있겠으나, 일론의 논리에도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부분은 있다.
일론은 트럼프의 계정 영구정지가 오히려 공론장에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쫓겨난 뒤 극우파들이 득시글거리는 트루스 소셜(Truth Social)로 이동했고, 당연히 그렇겠지만 각종 인종차별주의자들과 극우파들은 여기서 사실상 트럼프의 지도를 받으며 공동체에 해가 되는 온갖 논리들을 재생산하고 자가발전시키고 있다. 일론의 논리에 따르면, 이것이 오히려 단일 플랫폼 내에서 사람들끼리 치고박는 것보다 더욱 나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결국 그가 스스로를 일컬었던 'Free Speech Absolutist' 개념을 어찌됐든 위배하는 말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상과제로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타임아웃 등의 간접적 차단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결국 그 결정을 (예비) 오너인 일론 머스크 본인과 트위터의 경영진이 한다는 것도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가 스스로 강력히 추종한다던 것을 일부분 위배해가면서까지 트위터의 인수에 대한 여론을 호의적으로 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을까?
우리는 일론이 사실 트위터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돈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트위터 인수 자금은 언론에 공개된 바 대략 440억 달러 (한화 약 55조 원) 정도인데, 당연히 그가 현찰로 55조원을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그는 트위터를 인수하기 위해서 원래는 테슬라의 주식 약 125억 달러어치를 담보로 잡고 대출을 마련하려고 했었다.
일론이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를 살펴 보면 그는 약 255억 달러 가량의 트위터 인수 자금 중 절반을 테슬라 주식담보대출로 마련할 예정이며, 나머지 금액의 출처는 다른 종류의 은행 대출, 그리고 나머지 200~210억 가량은 Equity Financing, 즉 지분투자로 마련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가 미 증권거래위에 제출한 최초 자금조달 금액은 약 465억 달러 규모이므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자, 오늘자 테슬라 주가는 주당 800불이 조금 넘는다. 일론이 이 돈으로 125억 달러 대출을 받으려면 그 담보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1200만 주에서 최대 1,565만주 가량을 담보로 잡혀야 한다. 현재 일론의 테슬라 지분율은 약 17%, 1억 7,260만주 가량이다. 즉 그는 많게까지는 현재 자신의 보유비중 중 10% 가량을 담보로 잡혀야 하며, 남은 200억 달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추가로 담보를 잡히든지, 그렇지 않다면 테슬라의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물론 테슬라 주주총회가 트위터 인수를 위한 테슬라 유상증자를 허가할 지는 미래의 영역이나, 어찌됐든 일론은 추가적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본인의 지분율을 희석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때문에 일론이 선택한 제3의 길은 공동 인수단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일론은 이를 통해 약 71억 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했고, 향후 자금 조달의 규모에 따라 주식 담보를 덜 잡힐 수도 있다.
일론의 트위터 인수에 함께 하기로 한 투자자들의 면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하다. 오라클의 전 창업자 로런스 J. 엘리슨 (10억 달러), 세쿼이아 캐피탈 (8억 달러), Vy 캐피탈 (7억 달러), 바이낸스 (5억 달러), 앤드리슨 호로위츠 (4억 달러), 카타르 국부펀드 (3.75억 달러), 사우디의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자 등 대단한 사람들이 일론의 트위터 인수를 위해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일론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며, 일론의 트위터 인수를 처음에는 반대했거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라든지), 일론에게 저격을 당한 사람이라든지 (앤드리슨 호로위츠라든지), 또는 웹3.0 과 관련하여 일론에게 사기꾼 소리까지 듣던 a16z 라든지 하는 투자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즉, 앞으로 일론이 이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반영하려는 것은 아닐까? 라는 궁금증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물론 호로위츠같이 트위터의 Moderation Policy 를 꾸준히 비판해 오던 사람이야 일론이 자신을 저격했든 아니든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그 이외의 다른 투자자들의 경우 어떤 속내를 갖고 트위터 인수전에 참여했을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즉 일론의 태도 변화에는 그가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영업적' 부분이 포함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 본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경영 방침 중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트럼프의 복귀보다는 유료화 모델 도입이다. 그는 FT와의 인터뷰에서는 단일화된 공론장에서의 자유로운 발언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을 했지만, 뒤로는 유료화 모델을 준비하면서 'Affordable' 한 사람들만 트위터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아주 나쁜 모델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유료화 모델이 출범하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것은 당연히 가격 차별화다. 가격 차별화가 다가오면? 미국 선거를 망친 슈퍼팩처럼 결국 지불하는 돈에 따라 발언의 파워도 달라진다.
차라리 그가 트럼프 계정을 원상복구 시키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내버려두는 대신, 트위터의 모델을 계속 지금처럼 유지했으면 더 나았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눈 앞에서는 '나쁜 발언은 금지할 수도 있어요' 라는 당근을 살살 흔들면서 뒤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몇 자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발언권의 힘을 부여하는 방법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여전히 그의 트위터 인수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김현상
- 태도를 바꾼 이유가 사실은 더 무서운 법입니다 -
Financial Times 에서 어제부터 Future of Car 행사를 진행 하고 있는데, 자동차의 미래에 대한 행사다 보니 당연히 테슬라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를 초청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FT는 일론과 거의 1시간 10분 가량 긴 인터뷰를 라이브로 진행했는데, 물론 테슬라에 대한 일론의 이야기도 중요했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은 그의 트위터 인수 및 경영 방침에 관한 것이어서 FT 역시 일론과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여기서 일론이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인데, 그 요지는 바로 "공론장에서 일부 발언은 당연히 차단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정을 영구 정지하는 방식으로 쫓아내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라는 것이었다. 사실 트럼프의 계정 복구에 촉각을 기울이던 투자자들에게는 뒷 말이 더 중요할 수 있겠으나, 일론의 논리에도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부분은 있다.
일론은 트럼프의 계정 영구정지가 오히려 공론장에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쫓겨난 뒤 극우파들이 득시글거리는 트루스 소셜(Truth Social)로 이동했고, 당연히 그렇겠지만 각종 인종차별주의자들과 극우파들은 여기서 사실상 트럼프의 지도를 받으며 공동체에 해가 되는 온갖 논리들을 재생산하고 자가발전시키고 있다. 일론의 논리에 따르면, 이것이 오히려 단일 플랫폼 내에서 사람들끼리 치고박는 것보다 더욱 나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결국 그가 스스로를 일컬었던 'Free Speech Absolutist' 개념을 어찌됐든 위배하는 말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상과제로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타임아웃 등의 간접적 차단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결국 그 결정을 (예비) 오너인 일론 머스크 본인과 트위터의 경영진이 한다는 것도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가 스스로 강력히 추종한다던 것을 일부분 위배해가면서까지 트위터의 인수에 대한 여론을 호의적으로 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을까?
우리는 일론이 사실 트위터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돈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트위터 인수 자금은 언론에 공개된 바 대략 440억 달러 (한화 약 55조 원) 정도인데, 당연히 그가 현찰로 55조원을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그는 트위터를 인수하기 위해서 원래는 테슬라의 주식 약 125억 달러어치를 담보로 잡고 대출을 마련하려고 했었다.
일론이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를 살펴 보면 그는 약 255억 달러 가량의 트위터 인수 자금 중 절반을 테슬라 주식담보대출로 마련할 예정이며, 나머지 금액의 출처는 다른 종류의 은행 대출, 그리고 나머지 200~210억 가량은 Equity Financing, 즉 지분투자로 마련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가 미 증권거래위에 제출한 최초 자금조달 금액은 약 465억 달러 규모이므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자, 오늘자 테슬라 주가는 주당 800불이 조금 넘는다. 일론이 이 돈으로 125억 달러 대출을 받으려면 그 담보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1200만 주에서 최대 1,565만주 가량을 담보로 잡혀야 한다. 현재 일론의 테슬라 지분율은 약 17%, 1억 7,260만주 가량이다. 즉 그는 많게까지는 현재 자신의 보유비중 중 10% 가량을 담보로 잡혀야 하며, 남은 200억 달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추가로 담보를 잡히든지, 그렇지 않다면 테슬라의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물론 테슬라 주주총회가 트위터 인수를 위한 테슬라 유상증자를 허가할 지는 미래의 영역이나, 어찌됐든 일론은 추가적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본인의 지분율을 희석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때문에 일론이 선택한 제3의 길은 공동 인수단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일론은 이를 통해 약 71억 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했고, 향후 자금 조달의 규모에 따라 주식 담보를 덜 잡힐 수도 있다.
일론의 트위터 인수에 함께 하기로 한 투자자들의 면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하다. 오라클의 전 창업자 로런스 J. 엘리슨 (10억 달러), 세쿼이아 캐피탈 (8억 달러), Vy 캐피탈 (7억 달러), 바이낸스 (5억 달러), 앤드리슨 호로위츠 (4억 달러), 카타르 국부펀드 (3.75억 달러), 사우디의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자 등 대단한 사람들이 일론의 트위터 인수를 위해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일론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며, 일론의 트위터 인수를 처음에는 반대했거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라든지), 일론에게 저격을 당한 사람이라든지 (앤드리슨 호로위츠라든지), 또는 웹3.0 과 관련하여 일론에게 사기꾼 소리까지 듣던 a16z 라든지 하는 투자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즉, 앞으로 일론이 이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반영하려는 것은 아닐까? 라는 궁금증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물론 호로위츠같이 트위터의 Moderation Policy 를 꾸준히 비판해 오던 사람이야 일론이 자신을 저격했든 아니든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그 이외의 다른 투자자들의 경우 어떤 속내를 갖고 트위터 인수전에 참여했을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즉 일론의 태도 변화에는 그가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영업적' 부분이 포함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 본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경영 방침 중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트럼프의 복귀보다는 유료화 모델 도입이다. 그는 FT와의 인터뷰에서는 단일화된 공론장에서의 자유로운 발언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을 했지만, 뒤로는 유료화 모델을 준비하면서 'Affordable' 한 사람들만 트위터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아주 나쁜 모델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유료화 모델이 출범하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것은 당연히 가격 차별화다. 가격 차별화가 다가오면? 미국 선거를 망친 슈퍼팩처럼 결국 지불하는 돈에 따라 발언의 파워도 달라진다.
차라리 그가 트럼프 계정을 원상복구 시키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내버려두는 대신, 트위터의 모델을 계속 지금처럼 유지했으면 더 나았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눈 앞에서는 '나쁜 발언은 금지할 수도 있어요' 라는 당근을 살살 흔들면서 뒤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몇 자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발언권의 힘을 부여하는 방법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여전히 그의 트위터 인수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김현상
👍2
LIFE-TECHTREE/2.0
https://wp.me/paxmLG-TW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네요. 누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넷플릭스가 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니.. 컨텐츠업은 양과 질이 모두 중요한데 질 > 양인 것 같고, 한명의 감각을 가진 의사결정자/프로듀서의 역할이 정말 지대한 듯 합니다.
더불어 넷플릭스가 조직문화로 참 많은 책과 포스팅이 떠돌고 회자되었었는데, 역시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조직문화는 공허하네요.. 안타깝습니다.
박지웅
더불어 넷플릭스가 조직문화로 참 많은 책과 포스팅이 떠돌고 회자되었었는데, 역시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조직문화는 공허하네요.. 안타깝습니다.
박지웅
<콘텐츠 비즈니스가 어려운 본질적인 이유 5가지>
1. (대표적인 콘텐츠 산업인) 게임 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대개 다음과 같다. 게임 제작은 쉽지 않고, 예측도 어려우며, 성공하더라도 일회성이어서 반복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2. 우선 게임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이것이 게임 비즈니스가 가진 첫 번째 리스크다. 대작 게임은 개발에만 수천 명의 인력과 수년의 시간이 투입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케팅 및 유통에 또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간다.
3. GTA5개발에는 6년이라는 시간과 2억 6500만 달러가 투자됐다.
4. 그렇다면 소규모 인디 개발팀은 좀 사정이 다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제작비는 훨씬 적게 들지 몰라도, 돈은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디 게임 기획자들은 자기 인생의 몇 년과 가용 가능한 자신의 모든 자원을 게임 개발에 투자한다.
5. 인디 개발팀이 쏟는 제작비는 대형 개발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들이 감내하는 희생은 어떤 의미에서 오히려 더 비싸다고 할 수 있다.
6. 게임 비즈니스의 두 번째 리스크는 극단적인 흥행 산업이라는 점이다. 인기 게임 한두 개가 장르에 흘러드는 돈을 독식하다시피 한다.
7. 피파18의 2018년 매출은 7억 2300만 달러였다. 당시 콘솔 스포츠 게임 상위 10개 게임의 총 매물이 20억 달러였으니, 그중 28%를 피파18이 가져간 셈이다.
8. 해당 장르의 10위 게임이 가져가는 점유율이 2%도 되지 않으니, 1위 게임의 독식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9. 이 말은 곧 하나의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두는 동안 나머지 게임은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자독식 구조하에서 게임 회사는 초대박을 내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다.
10. 큰 게임 회사라고 해서 실패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2007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THQ는 최고의 게임 배급사 중 하나였지만, 2013년 상장폐지되어 분할 매각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11. 게임 산업의 세 번째 리스크는 계절성이다. 대대로 게임 매출은 1년의 마지막 두 달에 집중되곤 했다.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 NPD의 2006~2018년 데이터에 따르면, 11~12월의 게임 판매량은 연간 판매량의 41%를 차지했다.
12. 즉, 게임사는 두 달 동안에 고객 및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는 죽기 아니면 살기식 게임 비즈니스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자, 마케팅 예산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3. 게임 비즈니스의 리스크를 높이는 네 번째 요인은 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게임이 실제로 잘 팔릴지 예측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즉, 수요가 불확실하다.
14. 배급사, 플랫폼 기업, 소매업체들은 대작 게임을 출시하기에 앞서 프로모션과 유통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지만, 게임의 어떤 요소가 사람들을 열광시킬지, 게임이 출시될 시점에 시장의 경쟁 구도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5. 게임 비즈니스의 마지막 리스크는,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게임은 본질적으로 (콘텐츠 비즈니스가 아니라)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16. 단순하게 표현하면, (게임은) 면도기 사업 모델과 유사하다. 면도기 회사가 면도기가 아니라 면도날로 수익을 내듯, (게임 산업은) 하드웨어인 게임기는 손해 보고 팔고 보완재인 게임 소프트웨어에서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라는 것이다. (즉, 콘텐츠를 통해 만들어낸 관심과 트래픽을 전환할 수 있는 보완재를 효과적으로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요스트 판 드뢰넌, <룰 북> 중
Someone Yoon
1. (대표적인 콘텐츠 산업인) 게임 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대개 다음과 같다. 게임 제작은 쉽지 않고, 예측도 어려우며, 성공하더라도 일회성이어서 반복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2. 우선 게임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이것이 게임 비즈니스가 가진 첫 번째 리스크다. 대작 게임은 개발에만 수천 명의 인력과 수년의 시간이 투입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케팅 및 유통에 또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간다.
3. GTA5개발에는 6년이라는 시간과 2억 6500만 달러가 투자됐다.
4. 그렇다면 소규모 인디 개발팀은 좀 사정이 다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제작비는 훨씬 적게 들지 몰라도, 돈은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디 게임 기획자들은 자기 인생의 몇 년과 가용 가능한 자신의 모든 자원을 게임 개발에 투자한다.
5. 인디 개발팀이 쏟는 제작비는 대형 개발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들이 감내하는 희생은 어떤 의미에서 오히려 더 비싸다고 할 수 있다.
6. 게임 비즈니스의 두 번째 리스크는 극단적인 흥행 산업이라는 점이다. 인기 게임 한두 개가 장르에 흘러드는 돈을 독식하다시피 한다.
7. 피파18의 2018년 매출은 7억 2300만 달러였다. 당시 콘솔 스포츠 게임 상위 10개 게임의 총 매물이 20억 달러였으니, 그중 28%를 피파18이 가져간 셈이다.
8. 해당 장르의 10위 게임이 가져가는 점유율이 2%도 되지 않으니, 1위 게임의 독식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9. 이 말은 곧 하나의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두는 동안 나머지 게임은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자독식 구조하에서 게임 회사는 초대박을 내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다.
10. 큰 게임 회사라고 해서 실패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2007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THQ는 최고의 게임 배급사 중 하나였지만, 2013년 상장폐지되어 분할 매각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11. 게임 산업의 세 번째 리스크는 계절성이다. 대대로 게임 매출은 1년의 마지막 두 달에 집중되곤 했다.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 NPD의 2006~2018년 데이터에 따르면, 11~12월의 게임 판매량은 연간 판매량의 41%를 차지했다.
12. 즉, 게임사는 두 달 동안에 고객 및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는 죽기 아니면 살기식 게임 비즈니스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자, 마케팅 예산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3. 게임 비즈니스의 리스크를 높이는 네 번째 요인은 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게임이 실제로 잘 팔릴지 예측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즉, 수요가 불확실하다.
14. 배급사, 플랫폼 기업, 소매업체들은 대작 게임을 출시하기에 앞서 프로모션과 유통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지만, 게임의 어떤 요소가 사람들을 열광시킬지, 게임이 출시될 시점에 시장의 경쟁 구도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5. 게임 비즈니스의 마지막 리스크는,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게임은 본질적으로 (콘텐츠 비즈니스가 아니라)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16. 단순하게 표현하면, (게임은) 면도기 사업 모델과 유사하다. 면도기 회사가 면도기가 아니라 면도날로 수익을 내듯, (게임 산업은) 하드웨어인 게임기는 손해 보고 팔고 보완재인 게임 소프트웨어에서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라는 것이다. (즉, 콘텐츠를 통해 만들어낸 관심과 트래픽을 전환할 수 있는 보완재를 효과적으로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요스트 판 드뢰넌, <룰 북> 중
Someone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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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극복하면 크게 성장한다. 투자로 성공한 사람들이 깡통 계좌 세번이상 차보지 않았다면 투자자로서 성공을 논하기엔 이르다는 말도 그렇고 실제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들 중에서도 쫄딱 망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실패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위기는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온 힘을 다해 위기를 넘기고 나면 어느새 성장했음을 체감할 수 있다.
전에는 심적으로 부담되어 마주하기 어렵고 답답하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아무런 부담없이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명확하고 세밀하게 보이며 줌인 줌아웃이 자유자재로 되는 경험은 게임에서 레벨업 되는 기분만큼 통쾌하고 뿌듯하다.
지난 두달간의 고비를 넘기며 이런 기분을 오랜만에 경험했는데 까마득해 보이던 언덕을 넘고난 뒤에 펼쳐지는 광경은 전화위복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운도 따라주었지만 무엇보다 담대하게 대처를 했던 내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고비를 무사히 넘기자 정체 되었던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동이 트자마자 사업과 성장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렇게 또 한번의 고비를 넘기고 까마득해 보였던 한계단을 오르는데 성공했다. 한계단을 올랐을때 그 명쾌한 감정을 다음 계단을 오르기까지 기억하고 싶어 기록한다. 다음번 계단을 오를때는 더이상 그만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말고 문제해결과 성장에만 집중하기로 다짐해 본다. 이제 더이상 뒤돌아 갈 곳도 없잖아. 이제 정말 더 성장해서 더 명쾌하고 더 가벼워지는 수밖에 없다. 더더더.
정지윤
전에는 심적으로 부담되어 마주하기 어렵고 답답하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아무런 부담없이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명확하고 세밀하게 보이며 줌인 줌아웃이 자유자재로 되는 경험은 게임에서 레벨업 되는 기분만큼 통쾌하고 뿌듯하다.
지난 두달간의 고비를 넘기며 이런 기분을 오랜만에 경험했는데 까마득해 보이던 언덕을 넘고난 뒤에 펼쳐지는 광경은 전화위복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운도 따라주었지만 무엇보다 담대하게 대처를 했던 내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고비를 무사히 넘기자 정체 되었던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동이 트자마자 사업과 성장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렇게 또 한번의 고비를 넘기고 까마득해 보였던 한계단을 오르는데 성공했다. 한계단을 올랐을때 그 명쾌한 감정을 다음 계단을 오르기까지 기억하고 싶어 기록한다. 다음번 계단을 오를때는 더이상 그만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말고 문제해결과 성장에만 집중하기로 다짐해 본다. 이제 더이상 뒤돌아 갈 곳도 없잖아. 이제 정말 더 성장해서 더 명쾌하고 더 가벼워지는 수밖에 없다. 더더더.
정지윤
👍5
LIFE-TECHTREE/2.0
http://naver.me/5Yv5sCv5
목표주가 정해도 안가는 경우도 많더군요.
이번에도 그럴거 같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떨어지기 전까지 삼성전자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에도 그럴거 같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떨어지기 전까지 삼성전자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관료들이 자녀 스펙쌓기에 유독 골몰하는 이유.
-관료 계급에 대한 보상시스템 변화 때문아닐까.
“애들이 우리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높은 자리는 권력을 동반하고, 권력은 크게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불과 10여년전까지 그랬다. 어른들은 늘 말했다.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교수가 되거나 부장검사가 되면 사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시절이 그랬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다. GAME OVER. 다시 오지도 않고 와서도 안된다. 여기서부터 꼬인다. “여보, 우리 애들은 우리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외무고시출신 프랑스대사도, 삼성병원 부원장도, 대구지방국세청장도 자식들은 다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존재감도 없었던 친구는 용산에서 갈비집을 열어 고생하더니 지금은 한달 수천만 원을 번다. 일전에 사둔 수원CC 회원권 가격은 세배나 올랐다. 물론 아들은 식당을 물려받을 것이다. 딸은 이미 레인지로버를 타고 다닌다.
우리 아들이 특목고를 나와서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다고 한들 언제쯤 레인지로버를 탈 수 있을까. 나인 브리지의 다리가 몇 개인지 알 수 있을까. 출발점이 다르다. 이 나라의 자본주의가 비로소 꽃이 피고, 관료들의 그것은 참으로 초라한 것이 됐다. 물려줄 게 없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더 좋은 대학 좋은 스펙이라도 쌓아줘야 한다.
‘관료’라는 자리는 물려줄 수가 없다. 아버지가 치과 기공소를 하면 그 기공소는 곧 아들의 것이지만, 장관도 검사장도 태국 대사도 아들에겐 물려줄 게 없다. 그러니 아들에게 스펙이라는 갑옷을 더 단단히 입혀야 한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다 뭐라고...그냥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 갖고 살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져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관료계급은 늘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보상을 열심히 받고 살아왔다. 설령 ‘돈’이 아니여도 그것은 삶을 매우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최고위과정에서 만난 고향 후배가 설 연휴에도 아난티 리조트를 예약해주고, 작은아버지가 암에 걸리면 교회 집사님 통해 아산병원의 최고 종양외과 교수와 스케줄을 잡는다. 아내가 작은 전시회를 열려고 하면 중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하면 된다. 그 친구가 CFO로 있는 보험사에 예쁜 아트홀이 있는데 마침 2층이 비어있다. 다들 그렇게 엮여있다.
그런데 그 고리가 우리 자식세대에선 끊긴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의 네트워크는 고스란히 아들에게 연결된다. 크고 작은 자본도 대부분 증여된다. 우리 다 같이 인생 열심히 살았는데...
지근거리에 본 훌륭한 인품의 관료들도 낙마했다 하면 대부분 자녀문제였다. 자신에 대한 욕구는 절제해도 자녀에 대한 욕구는 절제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단순히 자식사랑 때문일까.
내가 받는 사회적 보상이 내 자녀시대부터는 어렵겠구나 하는 불안심리가 지나친 스펙쌓기를 부추긴다.
그래서인지 코스닥상장사를 갖고 있거나, 디벨로퍼로 자신이 어떤 연금보험에 가입해 있는 지조차 모르는 자산가 분들은 자식 교육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회사를 물려받거나 내 자본을 물려받을 건데, 카이스트를 나오나 버클리를 졸업하는 것이 뭐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대신 이분들 관심은 이런 거다. “대물림 핵심은 쪼개서 미리 미리, 차근 차근...”)
사실은 둘다 결국 ‘물려주기’에 방점이 찍혀있다. 권력과 돈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투명한 사회일수록 이게 잘 안된다. 그러니 무슨 케냐 전문가라도 동원해서 스펙을 쌓아야한다. 내가 사는 이 성에서 쫓겨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관료 사회의 권력은 거의 다 해체됐다. 오히려 더 조심하고 눈치를 봐야할 때도 있다. 돌이킬 수 없으니 이제 익숙해져야한다. 투명한 사회가 오염 사회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몇가지 고칠게 있다.
일단 우수한 능력의 관료들에게 현직에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한다. 그래야 유능한 인재들이 나랏일을 하는 동력이 유지된다. 재경행시 출신 과장에서 월급 500만원 주면서 자신이 맡은 수조원의 재정을 정당하고 투명하고 효율성 높게 집행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당장 청와대 들어가려는 부처 과장급이 부족하고, 국토부에 근무하던 여성 행정관은 헌재라도 가서 서울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최근 태국대사관을 떠난 한 젊은 여성외교관은 자신의 외시동기 6명이 벌써 그만뒀다고 했다. 그들이 옮겨간 곳은 대기업이나 유학이나 한국거래소등이다. 이들 직장이 외교관보다 나아진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데 관료에 대한 처우는 안바뀐다. 그들은 성직자가 아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우수한 인재로 나라를 경영하겠단 생각도 버려야한다. 북유럽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하고 공무원해도 된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왔다. 그럼 처우 개선을 안해도 된다. 대신 업무량이라도 줄여 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 과장 시켜준다고 해도 방콕의 UN에스캅에 지원하는 사례가 이어질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달은 거의 포기했다. 남은 것은 영등포의 24평도 살 수 없는 세종시의 아파트와 자꾸 줄어만 가는 공무원연금밖에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자녀들이다. 그렇게 자녀들의 스펙이 한없이 높아진다. 고등학생이 십여년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의해 알바니아인들이 어떤 사회적 차별을 받았는지 분석한 논문은 그렇게 탄생한다.
김원장
-관료 계급에 대한 보상시스템 변화 때문아닐까.
“애들이 우리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높은 자리는 권력을 동반하고, 권력은 크게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불과 10여년전까지 그랬다. 어른들은 늘 말했다.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교수가 되거나 부장검사가 되면 사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시절이 그랬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다. GAME OVER. 다시 오지도 않고 와서도 안된다. 여기서부터 꼬인다. “여보, 우리 애들은 우리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외무고시출신 프랑스대사도, 삼성병원 부원장도, 대구지방국세청장도 자식들은 다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존재감도 없었던 친구는 용산에서 갈비집을 열어 고생하더니 지금은 한달 수천만 원을 번다. 일전에 사둔 수원CC 회원권 가격은 세배나 올랐다. 물론 아들은 식당을 물려받을 것이다. 딸은 이미 레인지로버를 타고 다닌다.
우리 아들이 특목고를 나와서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다고 한들 언제쯤 레인지로버를 탈 수 있을까. 나인 브리지의 다리가 몇 개인지 알 수 있을까. 출발점이 다르다. 이 나라의 자본주의가 비로소 꽃이 피고, 관료들의 그것은 참으로 초라한 것이 됐다. 물려줄 게 없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더 좋은 대학 좋은 스펙이라도 쌓아줘야 한다.
‘관료’라는 자리는 물려줄 수가 없다. 아버지가 치과 기공소를 하면 그 기공소는 곧 아들의 것이지만, 장관도 검사장도 태국 대사도 아들에겐 물려줄 게 없다. 그러니 아들에게 스펙이라는 갑옷을 더 단단히 입혀야 한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다 뭐라고...그냥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 갖고 살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져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관료계급은 늘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보상을 열심히 받고 살아왔다. 설령 ‘돈’이 아니여도 그것은 삶을 매우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최고위과정에서 만난 고향 후배가 설 연휴에도 아난티 리조트를 예약해주고, 작은아버지가 암에 걸리면 교회 집사님 통해 아산병원의 최고 종양외과 교수와 스케줄을 잡는다. 아내가 작은 전시회를 열려고 하면 중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하면 된다. 그 친구가 CFO로 있는 보험사에 예쁜 아트홀이 있는데 마침 2층이 비어있다. 다들 그렇게 엮여있다.
그런데 그 고리가 우리 자식세대에선 끊긴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의 네트워크는 고스란히 아들에게 연결된다. 크고 작은 자본도 대부분 증여된다. 우리 다 같이 인생 열심히 살았는데...
지근거리에 본 훌륭한 인품의 관료들도 낙마했다 하면 대부분 자녀문제였다. 자신에 대한 욕구는 절제해도 자녀에 대한 욕구는 절제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단순히 자식사랑 때문일까.
내가 받는 사회적 보상이 내 자녀시대부터는 어렵겠구나 하는 불안심리가 지나친 스펙쌓기를 부추긴다.
그래서인지 코스닥상장사를 갖고 있거나, 디벨로퍼로 자신이 어떤 연금보험에 가입해 있는 지조차 모르는 자산가 분들은 자식 교육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회사를 물려받거나 내 자본을 물려받을 건데, 카이스트를 나오나 버클리를 졸업하는 것이 뭐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대신 이분들 관심은 이런 거다. “대물림 핵심은 쪼개서 미리 미리, 차근 차근...”)
사실은 둘다 결국 ‘물려주기’에 방점이 찍혀있다. 권력과 돈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투명한 사회일수록 이게 잘 안된다. 그러니 무슨 케냐 전문가라도 동원해서 스펙을 쌓아야한다. 내가 사는 이 성에서 쫓겨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관료 사회의 권력은 거의 다 해체됐다. 오히려 더 조심하고 눈치를 봐야할 때도 있다. 돌이킬 수 없으니 이제 익숙해져야한다. 투명한 사회가 오염 사회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몇가지 고칠게 있다.
일단 우수한 능력의 관료들에게 현직에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한다. 그래야 유능한 인재들이 나랏일을 하는 동력이 유지된다. 재경행시 출신 과장에서 월급 500만원 주면서 자신이 맡은 수조원의 재정을 정당하고 투명하고 효율성 높게 집행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당장 청와대 들어가려는 부처 과장급이 부족하고, 국토부에 근무하던 여성 행정관은 헌재라도 가서 서울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최근 태국대사관을 떠난 한 젊은 여성외교관은 자신의 외시동기 6명이 벌써 그만뒀다고 했다. 그들이 옮겨간 곳은 대기업이나 유학이나 한국거래소등이다. 이들 직장이 외교관보다 나아진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데 관료에 대한 처우는 안바뀐다. 그들은 성직자가 아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우수한 인재로 나라를 경영하겠단 생각도 버려야한다. 북유럽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하고 공무원해도 된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왔다. 그럼 처우 개선을 안해도 된다. 대신 업무량이라도 줄여 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 과장 시켜준다고 해도 방콕의 UN에스캅에 지원하는 사례가 이어질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달은 거의 포기했다. 남은 것은 영등포의 24평도 살 수 없는 세종시의 아파트와 자꾸 줄어만 가는 공무원연금밖에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자녀들이다. 그렇게 자녀들의 스펙이 한없이 높아진다. 고등학생이 십여년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의해 알바니아인들이 어떤 사회적 차별을 받았는지 분석한 논문은 그렇게 탄생한다.
김원장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