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약속에 나갔다가 만난 지인이 내 눈동자를 보더니 기겁을 했다. 흰자위가 너무 샛노랗다며 간에 무슨 큰 병이 생긴 거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길래, 당장 큰 통증은 없어서 자리에 앉아 바로 AI에게 증상을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길버트 증후군'. 반신반의하며 작년 건강검진 결과표를 넘겨줬더니, 간세포 손상을 뜻하는 AST, ALT 같은 다른 간 수치는 완벽하게 정상인데 황달을 일으키는 총빌리루빈과 간접빌리루빈만 뾰족하게 솟아오른 패턴을 짚어내며 길버트 증후군이 확실하다고 쐐기를 박아주더라. 검사 표에서 왜 하는지 모르는 항목이었는데, 이런데 쓸모가 있었구나 싶다.
살다 보니 내 몸에 이런 낯선 증후군이 있는 것도 다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예전에 방송인 강남도 앓고 있다고 밝혀서 꽤 유명해졌던 병이다. 한국인 인구의 대략 5% 정도, 즉 20명 중 1명꼴로 꽤 흔하게 갖고 있는 선천적 체질이라고 한다. 길버트 증후군은 간에서 빌리루빈을 처리하는 대사 효소의 능력이 일반인보다 떨어져서, 전날 속이 안좋아서 저녁을 굶었는데 이렇게 20시간씩 무식하게 굶거나 몸을 혹사시키면 효소 처리가 밀리면서 눈부터 노래지는 병이다.
게다가 단순히 눈동자 색만 변하는 게 끝이 아니었다. 눈이 노랗게 변할 정도로 체내 수치가 치솟는 상황이 되면,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무기력증과 머릿속이 안개 낀 것처럼 뿌예지는 '브레인 포그(Brain Fog)', 그리고 만성 피로와 경미한 소화불량 같은 증상들이 세트로 따라온다고 한다. 어쩐지 어제 단식하고 나서 유독 머리가 안 돌아가고 컨디션이 바닥을 치더라니, 내 간 효소가 뻗어버려서 온몸으로 보내는 파업 신호였던 거다.
단순 검색으로는 절대 유추해 내지 못했을 내 몸의 미세한 패턴과 증상을, 과거 데이터까지 대조해가며 맞춤형 주치의처럼 짚어내다니. 병원에 가기 전 덜컥 겁부터 났는데 수치 입력으로 단숨에 어떤 상황인지 특정해 마음을 진정시켜 줬다. 내 일상의 찌뿌둥함과 브레인 포그의 원인까지 완벽하게 읽어내는 걸 보며 진심으로 시대가 변했다
돌아온 대답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길버트 증후군'. 반신반의하며 작년 건강검진 결과표를 넘겨줬더니, 간세포 손상을 뜻하는 AST, ALT 같은 다른 간 수치는 완벽하게 정상인데 황달을 일으키는 총빌리루빈과 간접빌리루빈만 뾰족하게 솟아오른 패턴을 짚어내며 길버트 증후군이 확실하다고 쐐기를 박아주더라. 검사 표에서 왜 하는지 모르는 항목이었는데, 이런데 쓸모가 있었구나 싶다.
살다 보니 내 몸에 이런 낯선 증후군이 있는 것도 다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예전에 방송인 강남도 앓고 있다고 밝혀서 꽤 유명해졌던 병이다. 한국인 인구의 대략 5% 정도, 즉 20명 중 1명꼴로 꽤 흔하게 갖고 있는 선천적 체질이라고 한다. 길버트 증후군은 간에서 빌리루빈을 처리하는 대사 효소의 능력이 일반인보다 떨어져서, 전날 속이 안좋아서 저녁을 굶었는데 이렇게 20시간씩 무식하게 굶거나 몸을 혹사시키면 효소 처리가 밀리면서 눈부터 노래지는 병이다.
게다가 단순히 눈동자 색만 변하는 게 끝이 아니었다. 눈이 노랗게 변할 정도로 체내 수치가 치솟는 상황이 되면,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무기력증과 머릿속이 안개 낀 것처럼 뿌예지는 '브레인 포그(Brain Fog)', 그리고 만성 피로와 경미한 소화불량 같은 증상들이 세트로 따라온다고 한다. 어쩐지 어제 단식하고 나서 유독 머리가 안 돌아가고 컨디션이 바닥을 치더라니, 내 간 효소가 뻗어버려서 온몸으로 보내는 파업 신호였던 거다.
단순 검색으로는 절대 유추해 내지 못했을 내 몸의 미세한 패턴과 증상을, 과거 데이터까지 대조해가며 맞춤형 주치의처럼 짚어내다니. 병원에 가기 전 덜컥 겁부터 났는데 수치 입력으로 단숨에 어떤 상황인지 특정해 마음을 진정시켜 줬다. 내 일상의 찌뿌둥함과 브레인 포그의 원인까지 완벽하게 읽어내는 걸 보며 진심으로 시대가 변했다
Forwarded from 하나증권/에너지화학/윤재성
* 두바이유가 120$ 돌파하면서 정제마진 급락(30$ -> 19$). 유가 급등분 전가가 어려워지는 국면. 유가 급등으로 정제마진도 꺾이는데, 석유화학 개선은 더욱 어려울 듯
Forwarded from 여고생 코쨩👉🔕
아스트라 출시 현실부정하는 제미나이
[일반] 진짜 구글 다팔아야되나 제미나이 이새끼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tockus&no=17710544
[일반] 진짜 구글 다팔아야되나 제미나이 이새끼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tockus&no=17710544
제미나이 성능이 너무 떨어지는데다, 시간대도 아직 윤석열이 대통령인 시간대에 혼자 살고 있어서... 그냥 역사적 사실, 생활 팁 정도 검색 말고는 쓸데가 없음
😁1
Forwarded from [대신증권 유통/의류 유정현]
<삼익악기는 사실상 투자회사>
아침에 집에 있는 송진들 정리하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본 피아노 회사들 실적
삼익악기는 2분기에 매출액 539억원, 영업이익 29억원(OPM 5.4%). 매출액은 11% 증가, 영업이익은 전년도 24억원 적자에서 흑자 전환
이 회사는 독특한게 투자자산. 독일의 벡스타인 피아노를 2002년 삼익악기가 인수. 삼익악기는 2008년엔 전통의 독일의 자일러 피아노도 인수하고 아시아권 판로를 공유해서 적자였던 두 회사를 1년만에 흑자로 되돌림. 2008년 삼익악기는 자일러를 인수하면서 벡슈타인은 독일의 한 독지가에게 지분을 다시 넘김
이후 스타인웨이(Steinway&Sons) 인수에 공을 들임. 유럽의 피아노 회사들은 장인 정신 발동으로 수제품 고집하다가 대부분 망하였는데 스타인웨이는 가족 경영하다 망한 케이스. 지분이 사모펀드에 넘어갔다가 벡슈타인과 자일러 인수로 자신감이 붙은 삼익악기가 명품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스타인웨이를 인수하려 주식을 사들여서 30%까지 지분을 확보했으나 최종 경영권 확보에는 실패. 세계 최고의 브랜드, 스타인웨이를 소유한 회사로 등극해보려 했으나 실패. 이 때 인수전에 뛰어는 사모펀드에게 좋은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매각차익 750억원 챙김(스타인웨이는 상장사였으나 PEF로 넘어간 후 상장 폐지)
여기까지는 오래된 이야기이고 다시 삼익악기로 돌아와서, 올해 삼익악기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116억원, 그런데 상반기 기타 영업외 수익이 463억원임. 대부분 투자자산 기말 평가액 가치 상승에 따름. 이 중 가장 크게 기여한 투자자산은 단연코 SK하이닉스. 최초 취득금액 29억원, 기말 장부가액 275억원. 상반기 초 전체 130억원이었던 투자자산이 상반기말에는 660억원(아래 표). 이 회사는 2021년에도 구글, 메타, 애플 등에 투자해서 매우 큰 돈을 벌었던 회사. 스타인웨이 지분 매각한 돈으로 자금 운용 나름 매우 잘 한 결과. 스타인웨이 인수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당시로써는 어쩔 수 없었음. 중국 시장에서 스타인웨이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만약 인수에 성공했더라면 지금 어떤 상황일지?
아침에 집에 있는 송진들 정리하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본 피아노 회사들 실적
삼익악기는 2분기에 매출액 539억원, 영업이익 29억원(OPM 5.4%). 매출액은 11% 증가, 영업이익은 전년도 24억원 적자에서 흑자 전환
이 회사는 독특한게 투자자산. 독일의 벡스타인 피아노를 2002년 삼익악기가 인수. 삼익악기는 2008년엔 전통의 독일의 자일러 피아노도 인수하고 아시아권 판로를 공유해서 적자였던 두 회사를 1년만에 흑자로 되돌림. 2008년 삼익악기는 자일러를 인수하면서 벡슈타인은 독일의 한 독지가에게 지분을 다시 넘김
이후 스타인웨이(Steinway&Sons) 인수에 공을 들임. 유럽의 피아노 회사들은 장인 정신 발동으로 수제품 고집하다가 대부분 망하였는데 스타인웨이는 가족 경영하다 망한 케이스. 지분이 사모펀드에 넘어갔다가 벡슈타인과 자일러 인수로 자신감이 붙은 삼익악기가 명품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스타인웨이를 인수하려 주식을 사들여서 30%까지 지분을 확보했으나 최종 경영권 확보에는 실패. 세계 최고의 브랜드, 스타인웨이를 소유한 회사로 등극해보려 했으나 실패. 이 때 인수전에 뛰어는 사모펀드에게 좋은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매각차익 750억원 챙김(스타인웨이는 상장사였으나 PEF로 넘어간 후 상장 폐지)
여기까지는 오래된 이야기이고 다시 삼익악기로 돌아와서, 올해 삼익악기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116억원, 그런데 상반기 기타 영업외 수익이 463억원임. 대부분 투자자산 기말 평가액 가치 상승에 따름. 이 중 가장 크게 기여한 투자자산은 단연코 SK하이닉스. 최초 취득금액 29억원, 기말 장부가액 275억원. 상반기 초 전체 130억원이었던 투자자산이 상반기말에는 660억원(아래 표). 이 회사는 2021년에도 구글, 메타, 애플 등에 투자해서 매우 큰 돈을 벌었던 회사. 스타인웨이 지분 매각한 돈으로 자금 운용 나름 매우 잘 한 결과. 스타인웨이 인수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당시로써는 어쩔 수 없었음. 중국 시장에서 스타인웨이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만약 인수에 성공했더라면 지금 어떤 상황일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시간 싸움]
미국의 역봉쇄로 이란 경제는 최악이다.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거의 매일같이 미국, 중동, 유럽 번갈아가면서 전문가들과 화상회의 중인데 전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란 경제상황만큼은 평가가 대략 일치한다.
혹자는 제재에 익숙한 이란이 얼마든 저항경제로 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란은 40년 넘게 버티며 생존했다. 이번에도 갑자기 무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제재로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제재는 '여기까지'가 없다. 당할수록 아프다. 마치 빨래마친 수건 쥐어짜서 탈탈털어도 다시 짜면 물기떨어지듯, 한방울 한방을 쥐어짜며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게 경제 제재다.
따라서 이상하게 시작된 기이한 전쟁 대신 maximum pressure를 더 가속화하는게 미국의 이란전략상 정합적이었다. 당시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거의 혼잣말로 '이건 아닌데' 하던 참모들이 땅을 칠일이다. 물론 네타냐후에게 이 전쟁만큼 합리적이고 주효한 선택지는 없었다. 그 점에서 리차드 하스의 논리를 빌면, 이 전쟁이 이스라엘에게는, 아니 네타냐후 연립정부에게는 war of necessity이고, 미국에게는 war of choice라 할 수 있다.
암튼 타임라인이 얼추 보인다. 이란은 경제 제재를 무한정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6월 중순 자국에게 유리한 MoU를 근거로 빨리 전쟁을 종료시키는게 맞았다. 그 양해각서만 보면 트럼프는 하루빨리 전쟁 끝내려 하는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3천억불 전후 재건지원기금 미국이 확증 confirm까지 했으니 이란은 종전 협상에서 양해각서 약속대로 받아내고 이겼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종전의지를 보인 미국과 달리, 이란은 호르무즈 교전 이후 오히려 6개 조건을 더 내걸면서 전쟁을 끝내지 않고 끝까지갈 의지를 밝혔다. 이란의 속내 즉 '끝'은 무엇일까?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정권교체, 2차적으로 미국 의회의 정권교체로 본다. 한마디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정권교체로 벌인전쟁에서 지들 정권이 교체되고, 의회권력이 바뀌었다는 지점을 노린다. 이에 근거해 타임라인이 나온다. 10월 27일까지 물어뜯고 (이스라엘 총선), 1주일 후인 미국 중간선거까지 간 후에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정권 교체 승리서사'를 노리는 중으로 보인다. 미 하원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경우, 각 위원회 위원장을 민주당이 승자 독식하게 된다. 의회의 입법권만큼이나 청문회를 통한 조사권도 파워풀하다. 전쟁 청문회 국면이 시작되면 상황은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즉 현재 상하원 우위를 지키면) 전국민에게 5천불씩 준다고 한다. 엄청나다.
미국 중간선거도 중요하지만 이란에게는 이스라엘 총선이 더 중요하다. 네타냐후만 실각시켜도 정치적 승리서사를 내세우며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자 전쟁 이후 네타냐후를 싫어하는 전 중동권 대중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 심지어 영국, 프랑스도 네타냐후 정부와 각을 세우는 판 아닌가. 실제로 가디 아이젠코트가 이끄는 정파가 네타냐후의 리쿠드를 누를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때 희한한 일이 생겼다. UAE의 대통령인 아부다비의 룰러 모함메드 빈 자예드가 2023년 9월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로 하마스의 공격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소식이 이스라엘 언론 하아레츠 특종으로 나온거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 최악의 리더십은 무슨 섹스스캔들이나, 독직 부패 수뢰 혐의를 받는 이가 아니다. 적에게 기습을 허용한 지도자가 최악이다. 4차 중동전쟁 (욤키푸르)때 기습 당한 후 극적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골다메이어가 결국은 사임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볼 때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네타냐후가 고지받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넘어가는바람에 당했다면... 이건 최악의 안보 스캔들이 된다. 가뜩이나 측근 두 명이 카타르의 하마스 자금 지원 스캔들에 연루된 데다, 서안지구에서 파타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네타냐후가 가자의 하마스를 카타르 돈을 동원, 몰래 키웠다는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던 터다. 와중에 나온 아부다비발 특종은 다음달 선거를 앞둔 네타냐후에겐 치명적 악재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건.... 하아레츠의 이 보도에 나오는 아랍에미리트의 MBZ 관련 특종기사다. 이걸 어떻게 입수했을까. 누가 그 비밀스런 정상간 대화내용을 흘렸을까? 아랍 친구들은 아무래도 UAE가 상황 종료를 위해, 이스라엘 내정에 개입하려 한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내놓기도 한다. 차라리 강성 무인인 아이젠코트가 나와, 일단 전쟁 상황을 정리하되 계속해서 이란을 군사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아이젠코트 옵션이 낫다고 보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다.
하여간, 이제 시간싸움이다.
두어 달 동안 이란이 이스라엘의 정권교체를 희구하면서 버티고 네타냐후 연정 실각시 다음 상황으로 전개해들어가느냐, 아니면 경제난에 이란내 국가 위기가 먼저 나오고 여기에 네타냐후 권력이 유지되느냐가 관건이다. 이스라엘 총선이 끝나도 협상을 통해 연립정부가 구성되는데에는 또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갈 수 있기에, 미국 중간선거까지 묶이면 연말까지는 어떻게든 이 상황이 유지된다고 보면... 이란도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말로는 "시계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시간은 이란이 가지고 있다"는 호기로운 발언도 마냥 액면그대로 믿기 어렵다. 이 즈음에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나 로하니 전 대통령이 MoU에 입각한 협상 재개를 주장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란은 경제난을 수면하로 가라앉히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예멘 후티와 이라크 PMC등을 통해 몸을 푸는 기세다.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약해진 대신 이라크와 예멘에서 이란 주도의 '저항 축'이 세를 과시하려는 형국이다. 이란은 이런거 말고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회심의 필살기가 있다. 그 필살기를 쓰면 이란은 산다. 살다 뿐인가, 도약도 가능하고 향후 역내 패권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쓰지 못하고 있다. 강고한 이념과 그놈의 혁명수비대 강경파 때문에.
이 와중에 우리는 파병을 고민하고 있다. ㅠㅠ
우리에겐 2004년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민이다.
[시간 싸움]
미국의 역봉쇄로 이란 경제는 최악이다.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거의 매일같이 미국, 중동, 유럽 번갈아가면서 전문가들과 화상회의 중인데 전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란 경제상황만큼은 평가가 대략 일치한다.
혹자는 제재에 익숙한 이란이 얼마든 저항경제로 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란은 40년 넘게 버티며 생존했다. 이번에도 갑자기 무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제재로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제재는 '여기까지'가 없다. 당할수록 아프다. 마치 빨래마친 수건 쥐어짜서 탈탈털어도 다시 짜면 물기떨어지듯, 한방울 한방을 쥐어짜며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게 경제 제재다.
따라서 이상하게 시작된 기이한 전쟁 대신 maximum pressure를 더 가속화하는게 미국의 이란전략상 정합적이었다. 당시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거의 혼잣말로 '이건 아닌데' 하던 참모들이 땅을 칠일이다. 물론 네타냐후에게 이 전쟁만큼 합리적이고 주효한 선택지는 없었다. 그 점에서 리차드 하스의 논리를 빌면, 이 전쟁이 이스라엘에게는, 아니 네타냐후 연립정부에게는 war of necessity이고, 미국에게는 war of choice라 할 수 있다.
암튼 타임라인이 얼추 보인다. 이란은 경제 제재를 무한정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6월 중순 자국에게 유리한 MoU를 근거로 빨리 전쟁을 종료시키는게 맞았다. 그 양해각서만 보면 트럼프는 하루빨리 전쟁 끝내려 하는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3천억불 전후 재건지원기금 미국이 확증 confirm까지 했으니 이란은 종전 협상에서 양해각서 약속대로 받아내고 이겼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종전의지를 보인 미국과 달리, 이란은 호르무즈 교전 이후 오히려 6개 조건을 더 내걸면서 전쟁을 끝내지 않고 끝까지갈 의지를 밝혔다. 이란의 속내 즉 '끝'은 무엇일까?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정권교체, 2차적으로 미국 의회의 정권교체로 본다. 한마디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정권교체로 벌인전쟁에서 지들 정권이 교체되고, 의회권력이 바뀌었다는 지점을 노린다. 이에 근거해 타임라인이 나온다. 10월 27일까지 물어뜯고 (이스라엘 총선), 1주일 후인 미국 중간선거까지 간 후에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정권 교체 승리서사'를 노리는 중으로 보인다. 미 하원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경우, 각 위원회 위원장을 민주당이 승자 독식하게 된다. 의회의 입법권만큼이나 청문회를 통한 조사권도 파워풀하다. 전쟁 청문회 국면이 시작되면 상황은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즉 현재 상하원 우위를 지키면) 전국민에게 5천불씩 준다고 한다. 엄청나다.
미국 중간선거도 중요하지만 이란에게는 이스라엘 총선이 더 중요하다. 네타냐후만 실각시켜도 정치적 승리서사를 내세우며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자 전쟁 이후 네타냐후를 싫어하는 전 중동권 대중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 심지어 영국, 프랑스도 네타냐후 정부와 각을 세우는 판 아닌가. 실제로 가디 아이젠코트가 이끄는 정파가 네타냐후의 리쿠드를 누를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때 희한한 일이 생겼다. UAE의 대통령인 아부다비의 룰러 모함메드 빈 자예드가 2023년 9월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로 하마스의 공격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소식이 이스라엘 언론 하아레츠 특종으로 나온거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 최악의 리더십은 무슨 섹스스캔들이나, 독직 부패 수뢰 혐의를 받는 이가 아니다. 적에게 기습을 허용한 지도자가 최악이다. 4차 중동전쟁 (욤키푸르)때 기습 당한 후 극적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골다메이어가 결국은 사임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볼 때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네타냐후가 고지받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넘어가는바람에 당했다면... 이건 최악의 안보 스캔들이 된다. 가뜩이나 측근 두 명이 카타르의 하마스 자금 지원 스캔들에 연루된 데다, 서안지구에서 파타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네타냐후가 가자의 하마스를 카타르 돈을 동원, 몰래 키웠다는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던 터다. 와중에 나온 아부다비발 특종은 다음달 선거를 앞둔 네타냐후에겐 치명적 악재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건.... 하아레츠의 이 보도에 나오는 아랍에미리트의 MBZ 관련 특종기사다. 이걸 어떻게 입수했을까. 누가 그 비밀스런 정상간 대화내용을 흘렸을까? 아랍 친구들은 아무래도 UAE가 상황 종료를 위해, 이스라엘 내정에 개입하려 한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내놓기도 한다. 차라리 강성 무인인 아이젠코트가 나와, 일단 전쟁 상황을 정리하되 계속해서 이란을 군사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아이젠코트 옵션이 낫다고 보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다.
하여간, 이제 시간싸움이다.
두어 달 동안 이란이 이스라엘의 정권교체를 희구하면서 버티고 네타냐후 연정 실각시 다음 상황으로 전개해들어가느냐, 아니면 경제난에 이란내 국가 위기가 먼저 나오고 여기에 네타냐후 권력이 유지되느냐가 관건이다. 이스라엘 총선이 끝나도 협상을 통해 연립정부가 구성되는데에는 또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갈 수 있기에, 미국 중간선거까지 묶이면 연말까지는 어떻게든 이 상황이 유지된다고 보면... 이란도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말로는 "시계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시간은 이란이 가지고 있다"는 호기로운 발언도 마냥 액면그대로 믿기 어렵다. 이 즈음에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나 로하니 전 대통령이 MoU에 입각한 협상 재개를 주장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란은 경제난을 수면하로 가라앉히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예멘 후티와 이라크 PMC등을 통해 몸을 푸는 기세다.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약해진 대신 이라크와 예멘에서 이란 주도의 '저항 축'이 세를 과시하려는 형국이다. 이란은 이런거 말고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회심의 필살기가 있다. 그 필살기를 쓰면 이란은 산다. 살다 뿐인가, 도약도 가능하고 향후 역내 패권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쓰지 못하고 있다. 강고한 이념과 그놈의 혁명수비대 강경파 때문에.
이 와중에 우리는 파병을 고민하고 있다. ㅠㅠ
우리에겐 2004년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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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싸움]
미국의 역봉쇄로 이란 경제는 최악이다.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거의 매일같이 미국, 중동, 유럽 번갈아가면서 전문가들과 화상회의 중인데 전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란 경제상황만큼은 평가가 대략 일치한다.
혹자는 제재에 익숙한 이란이 얼마든 저항경제로 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란은 40년 넘게 버티며 생존했다. 이번에도...
미국의 역봉쇄로 이란 경제는 최악이다.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거의 매일같이 미국, 중동, 유럽 번갈아가면서 전문가들과 화상회의 중인데 전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란 경제상황만큼은 평가가 대략 일치한다.
혹자는 제재에 익숙한 이란이 얼마든 저항경제로 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란은 40년 넘게 버티며 생존했다. 이번에도...
김프 출입국 사무소
📢 9월 10일의 김프 고점과 저점 알림! 고점 : 1.69%, 7시 7분 경 저점 : 1.09%, 2시 45분 경
김프 저점이 조금씩 높아지는 느낌이네
Forwarded from 다영의 뉴스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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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듀오와 Z폴드8의 비교영상
Forwarded from 오타니 만다라트 투자
'정통 이코노미스트' 오석태 전 한국SG증권 상무 페이스북 글
SG에서 퇴직한 지 이제 1년 하고도 4개월째. 그동안 소규모 강연 두 번 한 것 말고는 변변한 소득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앞으로 수십 년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직장 생활 30년차, 만 57세에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나오게 된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이리라. 물론 지금도 현역인 81학번, 82학번 이코노미스트도 있지만 그분들이 예외적인 존재가 아닐까. 나이 50 넘기면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은 벌써 30대 초반부터였고, 14년 전 SG에 들어올 때도 '딱 10년만 버틴다' 는 생각이었으며, 특히 2025년 초 주택담보대출을 다 갚고 고가의 SUV를 팔아버린 건 분명 마음속으로 뭔가를 대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터.
이 나이에 커리어의 '수평이동'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뿐더러 많은 헤드헌터 분들도 확인시켜 주었다. 상장사 사외이사, 연구소나 로펌의 고문, 그리고 대학의 겸임교수 등을 추천하였는데, 몇 군데 이력서를 보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로펌 한 군데에서 그래도 나를 보자고 하였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반면 어느 대학의 강의 요청은 내 쪽에서 정중히 사양하였다 (얽매이기 싫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작년 가을에는 링크드인의 구직 공고를 열심히 보면서 싱가폴 홍콩 쪽의 몇 군데 자리에 지원하기도 했고 (물론 탈락), 정말 '나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 같기만 했던 미국 모 컨설팅 회사의 한국 채용 공고에 응모하면서 머리속으로 갖은 상상을 다 해봤던 적도 있다 (거의 두 달쯤 그 곳 사이트에 들락날락했나 보다).
정말 나의 커리어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일까? 아직도 마음은 50대도 아닌 40대 중반쯤 되는데? (애들 정신연령이 아직 10대라 그렇다고 너스레를 떨어 봅니다.) 동작대교 위에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한 번 정리를 해 보았다. 인생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했다면 60대에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뭐 다들 아는 얘기지만.
자격증이 역시 제일이다. 의대를 갔다거나 사시를 보아 변호사가 되었다면 60대는 물론 70대 초반까지도 일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나이가 들면 손님이 줄어들고 사무실 유지하기에 급급한다지만, 그게 어디인가. 돌이켜 보면 의대는 전혀 갈 생각이 없었고, 사법시험 역시 내가 의식적으로 거부하였다. 고1 겨울방학 때 '고시 안 보는 조건'을 걸고 문과 가라는 부모님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어떠했을까. 일단 교수 정년은 65세이고, 설사 전임이 아니더라도 '연구 활동'은 70대까지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자격지심인지는 모르지만, '지식 노동자'의 일원이 되기 위해 '박사'라는 타이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박사는 어쨌든 '인정'해 주니까. 거의 30년 동안 내가 '박사'라고 불렸던 것은 회사에서 나를 지식 노동자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었지만, 진짜 박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라는 뒷배경이 사라지자 그 인정도 사라졌다. (결국 인정이 중요하다는 얘긴데, 뜬금없지만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은 거의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내가 읽다가 어려워서 내던져버린 책이었다.)
회사에서 나를 지식 노동자가 아닌 진정한 '비즈니스맨'으로 인정해 주었다면 적어도 60대 초반까지 커리어가 연장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위에 언급한 이코노미스트 선배 분들, 그리고 사장급까지 승진한 몇 안 되는 직장인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자기 사업을 한다면 은퇴 시점을 계속 미룰 수 있겠지만, 그리고 육체 노동을 하는 60대 분들이 주변에 이제 꽤 많이 보이지만, 둘 다 내게 해당되는 사례는 아닌 듯하다. (안일하다고,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한다고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인정'이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그래도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뭔가 일을 하면서 인정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주변에서 많이 권하는 것이 바로 책을 써서 '작가'가 된 후 이를 바탕으로 강연과 유튜브에 나서는, 일종의 '지식 소매상(내지 자영업자)'이었다. (실제로 이 방면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죠. 물론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긴 합니다만) 하지만 책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들 기대하는 '한국 최고(最古?) 이코노미스트의 30년 경륜이 녹아 있는 책' 말이다.
이코노미스트, 정확하게는 금융회사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이코노미스트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하다는 게 책(글) 쓰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경제학을 전공한 것 자체가 고시공부(법대)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도피였고, 유학가서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 역시 인생의 최종 선택(취직?)을 유예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공부를 포기하고 돈 벌러 들어간 외국계 은행에서 어찌어찌 (때맞춰 들이닥친 외환위기 덕택에!)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게 되었으니, 결국은 모두가 나 자신의 주도적인 선택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라고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시작한 일에서 남다른 자긍심이나 소명 의식을 가지게 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에 풀칠하려고 일을 하지 않는가. 나도 결국은 돈 벌기 위해 일을 한 것이니까. 하루하루의 일상 생활에서 '일하는 시간'이 사라진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로 하나도 아쉽거나 공허한 것이 없었으니. (또다시, 결국은 '남의 인정'이 문제가 되었다는.)
그래도 내가 이코노미스트라는 직업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은 계기가 된 사건이 두 개가 있었으니, 하나는 2000년 베어 스턴스의 소송에서 나왔던 'economist is an entertainer' 라는 발언, 그리고 다른 하나는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였다.
2000년,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환율 전망을 따라 투자하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는 고객의 소송에 대해, 베어 스턴스 CEO가 법정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I don't know how he spends most of his time. He travels a lot and visits people and has lunches and dinners. He is an enternainer." 이 말은 바로 전 세계 금융회사 이코노미스트에게 퍼지게 된다. 물론 나한테까지 말이다. 자조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또 부인할 수는 없었다. 커리어 초기에 내가 내린 결론, '이 일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entertainer니까.' 참고로, entertain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문자 그대로 host guests with food and drink라는 것도 있다. 같이 식사하고 술을 마시면서 손님을 (여러 가지 재담으로) 재미있게 하는!
2008년 들이닥친 세계 금융 위기는 금융회사 이코노미스트라는 직업에 그나마 남아있던 '진정성'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씨티그룹)가 망하는 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경제 예측을 한다는 말인가. 어차피 경제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인데 (cf. Rational Expectations Revolution). 내가 그나마 미국에서 배웠던 거시경제학의 핵심은 바로 이것 하나인데.' 그때부터 나는 진짜 '엔터테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엔터테이너도 책을 낼 수야 있겠지만... 식사 자리에서 손님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안주거리로!)
SG에서 퇴직한 지 이제 1년 하고도 4개월째. 그동안 소규모 강연 두 번 한 것 말고는 변변한 소득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앞으로 수십 년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직장 생활 30년차, 만 57세에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나오게 된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이리라. 물론 지금도 현역인 81학번, 82학번 이코노미스트도 있지만 그분들이 예외적인 존재가 아닐까. 나이 50 넘기면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은 벌써 30대 초반부터였고, 14년 전 SG에 들어올 때도 '딱 10년만 버틴다' 는 생각이었으며, 특히 2025년 초 주택담보대출을 다 갚고 고가의 SUV를 팔아버린 건 분명 마음속으로 뭔가를 대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터.
이 나이에 커리어의 '수평이동'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뿐더러 많은 헤드헌터 분들도 확인시켜 주었다. 상장사 사외이사, 연구소나 로펌의 고문, 그리고 대학의 겸임교수 등을 추천하였는데, 몇 군데 이력서를 보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로펌 한 군데에서 그래도 나를 보자고 하였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반면 어느 대학의 강의 요청은 내 쪽에서 정중히 사양하였다 (얽매이기 싫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작년 가을에는 링크드인의 구직 공고를 열심히 보면서 싱가폴 홍콩 쪽의 몇 군데 자리에 지원하기도 했고 (물론 탈락), 정말 '나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 같기만 했던 미국 모 컨설팅 회사의 한국 채용 공고에 응모하면서 머리속으로 갖은 상상을 다 해봤던 적도 있다 (거의 두 달쯤 그 곳 사이트에 들락날락했나 보다).
정말 나의 커리어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일까? 아직도 마음은 50대도 아닌 40대 중반쯤 되는데? (애들 정신연령이 아직 10대라 그렇다고 너스레를 떨어 봅니다.) 동작대교 위에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한 번 정리를 해 보았다. 인생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했다면 60대에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뭐 다들 아는 얘기지만.
자격증이 역시 제일이다. 의대를 갔다거나 사시를 보아 변호사가 되었다면 60대는 물론 70대 초반까지도 일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나이가 들면 손님이 줄어들고 사무실 유지하기에 급급한다지만, 그게 어디인가. 돌이켜 보면 의대는 전혀 갈 생각이 없었고, 사법시험 역시 내가 의식적으로 거부하였다. 고1 겨울방학 때 '고시 안 보는 조건'을 걸고 문과 가라는 부모님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어떠했을까. 일단 교수 정년은 65세이고, 설사 전임이 아니더라도 '연구 활동'은 70대까지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자격지심인지는 모르지만, '지식 노동자'의 일원이 되기 위해 '박사'라는 타이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박사는 어쨌든 '인정'해 주니까. 거의 30년 동안 내가 '박사'라고 불렸던 것은 회사에서 나를 지식 노동자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었지만, 진짜 박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라는 뒷배경이 사라지자 그 인정도 사라졌다. (결국 인정이 중요하다는 얘긴데, 뜬금없지만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은 거의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내가 읽다가 어려워서 내던져버린 책이었다.)
회사에서 나를 지식 노동자가 아닌 진정한 '비즈니스맨'으로 인정해 주었다면 적어도 60대 초반까지 커리어가 연장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위에 언급한 이코노미스트 선배 분들, 그리고 사장급까지 승진한 몇 안 되는 직장인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자기 사업을 한다면 은퇴 시점을 계속 미룰 수 있겠지만, 그리고 육체 노동을 하는 60대 분들이 주변에 이제 꽤 많이 보이지만, 둘 다 내게 해당되는 사례는 아닌 듯하다. (안일하다고,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한다고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인정'이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그래도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뭔가 일을 하면서 인정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주변에서 많이 권하는 것이 바로 책을 써서 '작가'가 된 후 이를 바탕으로 강연과 유튜브에 나서는, 일종의 '지식 소매상(내지 자영업자)'이었다. (실제로 이 방면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죠. 물론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긴 합니다만) 하지만 책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들 기대하는 '한국 최고(最古?) 이코노미스트의 30년 경륜이 녹아 있는 책' 말이다.
이코노미스트, 정확하게는 금융회사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이코노미스트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하다는 게 책(글) 쓰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경제학을 전공한 것 자체가 고시공부(법대)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도피였고, 유학가서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 역시 인생의 최종 선택(취직?)을 유예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공부를 포기하고 돈 벌러 들어간 외국계 은행에서 어찌어찌 (때맞춰 들이닥친 외환위기 덕택에!)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게 되었으니, 결국은 모두가 나 자신의 주도적인 선택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라고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시작한 일에서 남다른 자긍심이나 소명 의식을 가지게 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에 풀칠하려고 일을 하지 않는가. 나도 결국은 돈 벌기 위해 일을 한 것이니까. 하루하루의 일상 생활에서 '일하는 시간'이 사라진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로 하나도 아쉽거나 공허한 것이 없었으니. (또다시, 결국은 '남의 인정'이 문제가 되었다는.)
그래도 내가 이코노미스트라는 직업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은 계기가 된 사건이 두 개가 있었으니, 하나는 2000년 베어 스턴스의 소송에서 나왔던 'economist is an entertainer' 라는 발언, 그리고 다른 하나는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였다.
2000년,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환율 전망을 따라 투자하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는 고객의 소송에 대해, 베어 스턴스 CEO가 법정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I don't know how he spends most of his time. He travels a lot and visits people and has lunches and dinners. He is an enternainer." 이 말은 바로 전 세계 금융회사 이코노미스트에게 퍼지게 된다. 물론 나한테까지 말이다. 자조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또 부인할 수는 없었다. 커리어 초기에 내가 내린 결론, '이 일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entertainer니까.' 참고로, entertain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문자 그대로 host guests with food and drink라는 것도 있다. 같이 식사하고 술을 마시면서 손님을 (여러 가지 재담으로) 재미있게 하는!
2008년 들이닥친 세계 금융 위기는 금융회사 이코노미스트라는 직업에 그나마 남아있던 '진정성'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씨티그룹)가 망하는 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경제 예측을 한다는 말인가. 어차피 경제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인데 (cf. Rational Expectations Revolution). 내가 그나마 미국에서 배웠던 거시경제학의 핵심은 바로 이것 하나인데.' 그때부터 나는 진짜 '엔터테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엔터테이너도 책을 낼 수야 있겠지만... 식사 자리에서 손님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안주거리로!)
그나마 이코노미스트 경력 초기 (대략 세계금융위기 시점까지) 에는 한국 경제 담당이라는 내 업무가 시장에 잘 먹혀 들어갔는데 이제는 다들 미국 경제만 바라본다는 점 역시 책을 쓰는 데 어려운 점으로 작용한다. 거의 30년 동안 나는 공식적으로 한국 경제의 분석 및 전망만을 담당했을 뿐 미국 및 여타 세계 경제에 대해서는 동료 이코노미스트의 '하우스 뷰'를 충실히 전달했을 뿐이다. 물론 이런 '들은 풍월'이 좋은 '엔터테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했을 지 몰라도 미 연준 정책 방향이나 '달러 패권' 등에 대한 본격적인 책을 쓰기 위해서는 한 20% 부족했던 것 같다. 그나마 한국 경제의 성장 경로도 반도체 하나가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 거의 10년이 넘었고, 내가 퇴직한 바로 그 시점부터는 반도체 의존도가 어마어마하게 커졌으니, 이제는 반도체 전문가가 아니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꿈도 못 꾸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경제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근본적인 고민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글(책)' 보다는, '죽기 전에 정말 간절히 남기고 싶은 글'을 먼저 써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은 내가 가 보았던 여러 곳들에 대한 여행기를 쓰고 싶고 ('역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의 기록만은 아니다. 내가 성실히 잘 기록하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는 어떤 책의 구절에서 다시금 힘을 얻는다), 결국 마음 속 커다란 구멍으로 남을 것 같은 가족들과의 관계, 그 후회에 대해 언젠가는 글을 남겨야 할 것 같다. '투자의 미래' 같은 책은 이런 숙제를 다 마친 다음에야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시작도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이렇게 글을 쓴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나 자신이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요 생존의 수단이 되었다. 몇년 동안(2014-17)은 읽은 모든 책에 대한 감상문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살기도 했지만, 점차 감상문 쓰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 그 시간에 새 책을 더 많이 읽기로 했다. 2017년 71권, 2018년 100권, 2019년 145권, 2020년 153권... 2024년 110권, 2025년 100권, 그리고 올해 8월까지 84권. 직장을 그만 두었는데도 절대적인 독서량이 늘지 않았다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점점 책 읽기가 힘들어졌다. 84번째 책 '보바리 부인'에 이어 85번째 '루쉰 소설 전집'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방에 있던 책들 중 거의 2-300여 권을 버렸다. 요즘 흔한 AI관련 표현을 따르자면, 무지막지한 학습이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AI에 훨씬 못 미치는 나 자신의 추론 능력에 실망하여, 결국 학습을 중단하고 말았다. 실은 그동안 추론을 회피하고 살았으니... LLM과 비교하면 좌절만이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글쓰기를 시도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독서, 여행 (계획 및 실행), 운동 (100% 혼자 하는) 이 세 가지로 시간을 채우다가, 갑자기 독서가 불가능하게 되니 이를 글쓰기로 한 번 메워 보자는 시도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지인 여럿을 만났는데 (심지어는 여행지에서 만난 택시 기사가 금융권 은퇴자였는데) 점점 더한 공허를 느낄 뿐이었으니. 어쩌면 이런 두서없는 글쓰기가 제대로 된 책 한 권으로 향하는 물꼬를 틀 수도 있고.
그래도 여행(계획)은 계속되고 (다음달 어쩌면 유럽), 혼자서 운동하는 것도 여전하다. (별 일 없으면 아랫층 피트니스에서 근력운동 및 실내자전거 30분씩, 한강 자전거타기, 조금 쉬었던 등산까지)
그런데 정말, 이런 생활을 20년도 넘게 더 해야 하는 것일까. 누구를 만나도 '일반적인 (=어느 정도 성공한) 화이트칼라 퇴직자'에게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결론인데. 밤마다 네모난 천장을 바라보며 답답해한 것도 거의 100번은 넘는데 말이다.
다음은 여행기를 써야겠다. 고인 물을 다 비워내면 새로운 샘물이 솟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경제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근본적인 고민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글(책)' 보다는, '죽기 전에 정말 간절히 남기고 싶은 글'을 먼저 써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은 내가 가 보았던 여러 곳들에 대한 여행기를 쓰고 싶고 ('역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의 기록만은 아니다. 내가 성실히 잘 기록하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는 어떤 책의 구절에서 다시금 힘을 얻는다), 결국 마음 속 커다란 구멍으로 남을 것 같은 가족들과의 관계, 그 후회에 대해 언젠가는 글을 남겨야 할 것 같다. '투자의 미래' 같은 책은 이런 숙제를 다 마친 다음에야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시작도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이렇게 글을 쓴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나 자신이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요 생존의 수단이 되었다. 몇년 동안(2014-17)은 읽은 모든 책에 대한 감상문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살기도 했지만, 점차 감상문 쓰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 그 시간에 새 책을 더 많이 읽기로 했다. 2017년 71권, 2018년 100권, 2019년 145권, 2020년 153권... 2024년 110권, 2025년 100권, 그리고 올해 8월까지 84권. 직장을 그만 두었는데도 절대적인 독서량이 늘지 않았다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점점 책 읽기가 힘들어졌다. 84번째 책 '보바리 부인'에 이어 85번째 '루쉰 소설 전집'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방에 있던 책들 중 거의 2-300여 권을 버렸다. 요즘 흔한 AI관련 표현을 따르자면, 무지막지한 학습이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AI에 훨씬 못 미치는 나 자신의 추론 능력에 실망하여, 결국 학습을 중단하고 말았다. 실은 그동안 추론을 회피하고 살았으니... LLM과 비교하면 좌절만이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글쓰기를 시도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독서, 여행 (계획 및 실행), 운동 (100% 혼자 하는) 이 세 가지로 시간을 채우다가, 갑자기 독서가 불가능하게 되니 이를 글쓰기로 한 번 메워 보자는 시도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지인 여럿을 만났는데 (심지어는 여행지에서 만난 택시 기사가 금융권 은퇴자였는데) 점점 더한 공허를 느낄 뿐이었으니. 어쩌면 이런 두서없는 글쓰기가 제대로 된 책 한 권으로 향하는 물꼬를 틀 수도 있고.
그래도 여행(계획)은 계속되고 (다음달 어쩌면 유럽), 혼자서 운동하는 것도 여전하다. (별 일 없으면 아랫층 피트니스에서 근력운동 및 실내자전거 30분씩, 한강 자전거타기, 조금 쉬었던 등산까지)
그런데 정말, 이런 생활을 20년도 넘게 더 해야 하는 것일까. 누구를 만나도 '일반적인 (=어느 정도 성공한) 화이트칼라 퇴직자'에게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결론인데. 밤마다 네모난 천장을 바라보며 답답해한 것도 거의 100번은 넘는데 말이다.
다음은 여행기를 써야겠다. 고인 물을 다 비워내면 새로운 샘물이 솟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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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tae Oh
SG에서 퇴직한 지 이제 1년 하고도 4개월째. 그동안 소규모 강연 두 번 한 것 말고는 변변한 소득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앞으로 수십 년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직장 생활 30년차, 만 57세에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나오게 된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이리라. 물론 지금도 현역인...
직장 생활 30년차, 만 57세에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나오게 된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이리라. 물론 지금도 현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