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프로의 콘텐츠 모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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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을 하려는 분들에게

외식업을 하려는 후배가 있어서 며칠 전에 한참 통화했다. 몇가지 조언을 해주다가 통화가 길어져서 1시간 넘게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느낀 것이 나도 나름대로 외식업에 대해서 경험이 많이 쌓였다는 점이었다.

2014년, 지금은 미스터리브루잉을 잘 운영하고 있는 이인호 와 함께 이태원 로비본드에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직간접으로 열게 된 매장이 지난 7년 동안 13개이다. 그 중 양조면허를 받은 곳만도 5군데이다.

(로비본드, 콜드컷츠, 어메이징 성수 본점, 성수 별관, 하남 스타필드, 대치 어메이징익스프레스, 어메이징 송도 브루펍, 어메이징 잠실 브루펍, 이태원 브루독 브루펍, 어메이징 건대, 논현 위쿡, 약수 배달전용 놀라운치맥, 이천 브루어리 탭룸)

로드샵 지하 1층, 지상 2층, 폐공장, 폐창고, 쇼핑몰지하, 오피스빌딩 지하, 공유주방, 배달 전용매장, 직접 건축한 공장의 테이스팅룸, 해외 브랜드의 라이센스 매장까지 다양한 위치, 평수, 환경에서 브루펍, 서빙 탭룸, 셀프탭, 공유주방, 배달전용매장 등 다양한 형태의 오프닝을 해 본 경험이 쌓인 것 같다.

후배에게 조언이랍시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지만 '웬만하면 하지 말지..' 혹은 '나는 분명히 너를 말렸다' 라는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한국에서 외식업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 업을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말리고 본다. 그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들 이 업으로 들어온다.

이참에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외식업 출신도 아니고, 쉐프도 아니기 때문에 나의 전문분야인 사업계획과 오퍼레이션 개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

내가 그 동안 외식업에 대해서 느낀 몇 가지 특징들.

1) 이 업은 초기에 투자비용이 크고, 초기에 셋팅을 잘못하면 그 다음에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로케이션 (위치) 선정과 컨셉 설정이 있다. 위치선정과 컨셉, 그리고 동선 디자인을 포함한 인테리어 공사 등을 하고 나면 성패의 거의 80% 이상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 잘못하면 그 후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소용이 없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충분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단계에서 원하던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오프닝 한 후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폐점을 선택한다.

2) 특히나 위치를 선정하는 단계에서는 발품을 팔아서 보고 또 보고, 계속해서 봐야 한다.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올 때까지 뒤져봐야 한다. 위치선정에서는 공인중개사의 도움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는데 나는 기업형보다는 개인형 사장님을 선호한다. 기업형은 절대로 좋은 위치를 어설픈 개인 업체들에게 주지 않는다. 건물주 입장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임차인이 월세를 못 내는 경우인데, 개인업주들은 임대료를 못낼 확률이 가장 높은 군에 속한다. 따라서 좋은 위치는 외식전문기업의 직영점에게 제일 먼저 소개가 가고, 그 다음에 프랜차이즈의 점포개발팀에 소개해 준다. 그들이 그나마 어설픈 30-40대 개인 사장님보다 월세를 못낼 확률이 적다. 프랜차이즈형 점포는 망해도 거래가 될 확률이 조금은 있다. 그런데 개인이 월세도 못내다가 망하면 골치아프다. 일례로 요즘은 빈도가 줄었지만 성수동에서 좋은 위치가 나오면 가장 먼저 어메이징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그나마 개인 부동산 사장님들은 자꾸 얼굴 들이밀고 연락하면 좋은데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성수점 본점을 얻어준 부동산 사장님과 지금도 2-3달에 한번은 별 일이 없어도 통화를 한다.

3) 이 업은 건물주 운이 따라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기업(법인)건물주는 피한다. 특히 코로나19 같은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기업건물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대개 기업이 소유한 건물이라면 그 건물 담당자가 나오는데 그들도 월급쟁이인지라, 아무리 어려움을 호소해도 십원한푼 봐줄 수 없다. 반대로 개인 건물주 중에서는 젊었을 때 사업도 해보고 망해도 본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사업하는 사람들 심정을 조금은 이해해준다. 차선은 개인 중에서 물려받은 건물주이다. 그들은 기업건물주와 자수성가 건물주의 중간 정도에 있는 것 같다. 최악은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코로나가 아니라 핵전쟁이 터져도 기계적으로 돈을 걷어간다. 우리도 코로나가 터져도 월세를 단 한달도 깎아주지 않은 건물은 사모펀드 소유 건물이었다. 사모펀드 돈도 결국 연금을 받아서 굴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우리의 국민연금이 다 이렇게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4) 이 업은 현금전환주기계산을 잘해야 한다. 원재료를 사서, 물건을 팔고, 다시 돈이 들어오는 사이클을 계산을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원재료를 살때 한참 미리 돈을 줘야 살 수 있는 재료들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원재료는 수입인데 두 달 전에 돈을 줘야 물건을 띄워주고,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서 파는데 평균 한달이 걸린다고 하자. 그러면 카드결제로 하는 경우 3-5일후에 현금이 들어오므로 현금전환주기는 약 95일이 넘게 된다. 피같은 현금이 95일 동안 잠기는 것이다. 문제는 사업이 잘 되면 더 많은 돈이 계속해서 잠기는데 있다. 혹시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쓴 '슈독'을 읽어본 사람이 있는가? 그는 처음에 일본에서 신발을 수입해서 판매했는데, 돈을 먼저 보내야 일본에서 신발을 보내줬다. 사업은 잘 되는데 계속해서 돈을 꾸러 다녀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슈독 책의 1/3 정도의 내용은 돈을 구하러다니는 내용이다.

5) 이 업은 마감을 잘 해야 한다. 위의 현금전환주기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 이야기인데, 하루하루 현금계산도 철저히 하고, 매출과 사입에 대한 그림을 정확하게 그리지 않으면 육체의 피로와 인간들과의 부대낌으로 자칫 비즈니스의 현상태를 잊어버릴 수 있다. 매출, 회전률, 객단가, 고객수, 현금상황, 사입주기, 급여 등 따질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테라로사 창업자도 이디야 창업자도 모두 은행원 출신이라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꼬박꼬박 매일의 마감을 치는 것이 몸에 버릇으로 남아 있는 이런 분들이 훨씬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다.

6) 어느 리테일이나 비슷하겠으나, 이 업에서 가장 흔한 행동은 기다림이다. 특히나 매장이 텅 비어 있을 때, 텅빈 매장을 바라보는 기다림은 정말로 강철 멘탈을 요구한다. 모든 식자재를 준비하고, 매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직원들도 뽑아놓아도 고객이 오지 않으면 그 기다림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래서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업태가 바로 이 외식업이다. 기다릴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멘탈을 잃고 딴짓을 해버린다. 거기서 대부분 망하는 것 같다.

7) 이 업에서는 인력의 드나듦이 자유롭다. 한국은 인당 외식업체의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며, (거꾸로 말하면 외식업체당 커버하는 인구수가 가장 작다) 기업형 외식업체보다 자영업 형태 외식업체가 다른 나라대비 월등하게 많다. 단적으로 보면 미국만 봐도 프랜차이즈 내지는 기업형 외식업체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CJ푸드빌, 신세계푸드 등 대기업 외식업체도 맥을 못춘다. 그나마 프랜차이즈 치킨체인들이 명맥을 유지하는데 이들도 모두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운영하는 개인점포이다. 외식업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이 현상에 대해 외식업 인력의 프로페셔널리즘, 오너십 그리고 커리어 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외식업은 커리어패스가 짧은데, 처음에 시작해서 점장 내지는 수퍼바이저가 될 때까지 불과 몇년 밖에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에서 중간 관리자가 될때까지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는 것과는 극적으로 다르다. 해당 외식업체 내에서는 더 승진을 하고자 해도 할 곳이 없어지면 돈을 더 많이 주는 다른 곳으로 수평이동한다. 그리고 그런 업체의 옵션이 전국에 20-30만개 있다. 대기업, 외국계, 금융사, IT 스타트업 등 한두다리만 건너면 서로 얽히고 섥혀 있는 한국의 좁은 생태계와는 달리 외식업은 공급/수요면에서 완전경쟁시장이다. 레퍼런스 체크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외식사업부 직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제시해 주려 노력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8) 이 업은 인력중심이지만 서비스의 전문성을 잘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어에서 '서비스'라는 단어는 '군만두 써비스'에서처럼 "공짜"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냥 내가 쓱싹 만들어서 주는 것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우리의 인식에서 서비스, 즉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인정하지 않는지 무의식을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요식업 혹은 외식업이라는 단어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사장님들이 단지 음식을 팔기 위해서 이 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명칭은 여전히 '식'에 맞춰져 있다. 경험을 주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환대를 제공하는 측면은 강조되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외식업도 호스피탈리티 (hospitality, 환대) 사업이라고 명명한다. 영어 레스토랑의 어원도 'rest~'로 시작하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시피 기력을 보충하는 곳 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음식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언어의 인식형성 작용은 절대적이다. 한국인의 머릿속에 외식업이라고 하면 '음식을 파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받는 서비스는 '당연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손님은 왕이다' 같은 폭력적 인식이 팽배한 한국인의 인식속에서 '너희들은 음식이나 파는 사람들'이라는 멍에까지 씌워버리니. 그래서인지 갑질도 흔하다.

9) 이 업에서 수십년 장수하는 경우는 자가로 영업하는 고깃집/ 국밥집/ 냉면집이 거의 유일하며 그 외에는 대개 3년도 버티지 못한다. 나는 한번 형성된 점포가 30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자기 건물에서 하는 고깃집/ 냉면집/ 국밥집을 제외하고는 거의 못봤다. 30년된 피자집, 스파게티집, 맥주집, 경양식집, 햄버거집, 스시집을 아시는 분 계시다면 연락 바란다. 물론 없지는 않겠지만 흔하지 않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외식을 '유행' 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며, '요즘 핫한 맛집'을 끊임없이 찾는다. 가격이 합리적인 미슐랭 레스토랑도 가서 사진찍고 인스타에 올리면 다시 찾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번 깃발을 꽂으면 두번 다시 오지 않는 정복 및 mission clearing 심리다. 유일한 예외는 고깃집/ 국밥집/ 냉면집인 것 같다. 이 업종에서는 그래도 20년 넘은 곳들의 간판이 몇개는 생각난다. 그 분들은 젊어서 열심히 벌어서 그 건물/장소를 사서 건물주로서 맘편히 장사를 하시는 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성수동에 들어온 것이 2015년 말이고, 점포를 오픈한 것이 2016년 4월이다. 그 후로 수많은 외식업체가 성수동에 생겼지만 계속 유지하는 곳은 드물다. 심지어 벌써 2-3번이나 간판이 바뀐 곳들도 있다. 이제는 거의 무감각해질 지경이며, 또 생겼구나, 또 바뀌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생명력이 긴 외식업은 도대체 무엇일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10) 이 업은 특이하게도 전국적인 지명도의 성공한 사업가가 드물다. 우리나라의 이 큰 외식사업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없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는가? 게임, 화장품, IT 등 웬만큼 큰 산업은 대표하는 CEO가 있지만, 외식업에는 유독 전국구로 성공한 CEO가 드물다. 몇년 전부터 스타쉐프들이 방송출연을 하긴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사업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장사도 불과 한두달 전까지 없었다. 최근에 상장한 교촌을 제외하면 모두 우회상장이다. 그만큼 스케일을 내기가 어렵다. 해외도 녹록치는 않다. 미국조차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나, 쉐이크쉑의 데니 메이어 같은 블록버스터 급의 기업과 CEO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더더군다나 성공한 '외식기업' 이라는 것이 출현하기 어렵다. 그나마 최근에 상장한 교촌과 같은 프랜차이즈가 일정 수준 이상 스케일을 만들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 아닌가 생각된다.

11) [추가] 한국에서의 외식업은 일정부분 은퇴 혹은 퇴직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한다. 이들이 곧바로 실업자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음식점 면허를 받기가 까다로운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의 외식업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지도 모른다. 특히 이들은 프랜차이즈로 눈을 돌리는데, 그래서 IMF나 금융위기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고 나면 프랜차이즈 점주의 풀(pool)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때로는 그 인력의 퀄리티도 좋아진다. 예컨대 코로나19 이후에 프랜차이즈 점주 풀이 증가하면서 프랜차이즈가 다시 한번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서 공급량이 늘고 인력의 퀄리티가 좋아지면 어떤 식으로든 산업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분야는 대기업이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생계형 점주들을 관리하면서 생기는 많은 비난과 고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유일한 예외는 파바인데 파바는 창업비용이 높으나 한 점주가 여러 점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계형 보다는 사업형 점주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생계형 점주들의 아우성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다. 한편, 외식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프랜차이즈화 되면 업의 본질이 서비스업에서 유통업으로 바뀐다. 퀄리티는 희생하면서도 균질성과 가성비를 높인 승부가 된다. 그래서 프랜차이즈가 상대적으로 더 발달하면 '질' 보다는 '양'에 집중된 산업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고 치킨을 제외하면 견고한 성장을 달성하는 경우도 없고 그나마 상장까지 가는 경우가 역사상 단 한 업체밖에 없다.
삼쩜삼(숨겨진 환급금 찾아주는 서비스 제공)이 은행에 도전하네요~
자기 안에 뭔가 몬스터적인 욕망이 있기는 한데 겉으로의 삶은 젠틀해야해. 젠틀하게 살긴 해도 감춰진 몬스터적 욕망을 표출하고픈 이들의 브랜드가 “젠틀 몬스터”. ‘기술, 생산, 문화, 스타일, 공간에서 ‘세상과 사람을 놀라게 하자’ - 김한국대표
“소비자는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필요하다고 느끼면 삽니다 이 구매욕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죠” -김한국대표
직장인이면 답할 필요가 있는 3단계 질문

1단계.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가?
1)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라
- 무기: 이것 하나는 정말 잘 한다, 이건 저 사람에 맡기면 보증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 세일즈? 기획? 개발? 마케팅? 교육? 채용? 경영? 유통? 투자유치? 커머스? 신사업 발굴? 투자? 스케일업 기술? 카피쓰기? 등등. 차별화된 실력.
- 남들에 비해 탁월하게 잘하는 기술, 방법론
- 여기에 끈기, 신뢰, 학습능력, 유연성 등 태도까지 결합된다면 더더욱 파워풀
2) 무기를 만드는 장소는 회사다
- 무기는 학교나 학원 교육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회사는 자신의 무기를 만들수 있는 최상의 장소.
- 무기를 만들때까지는 연봉이나 워라밸에 연연하지 말고 최대한 배우고 일을 확대하고 난이도 있는 프로젝트 참여
- 회사를 잘 활용하면 자신도 성장하고 회사도 잘되니 회사에서도 인정받게됨.
-> 이 무기가 있으면 회사내 및 이직 경쟁력을 유지할수 있다.

2단계. 그 무기를 남들이 돈을 주고 구입할 정도가 되는가?
- 그 무기가 남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가?
- 남들이 당신의 무기를 돈을 주고 구입할 정도가 되는가?
-> 이 정도가 되면 1인 사업가가 가능하다.

3단계. 그 무기가 남들이 돈을 주고 구입할 정도가 될 정도를 넘어 시장규모를 이룰수 있는 정도가 되는가?
-> 이 정도가 되면 창업도 가능. 시장규모에 따라서 기업규모를 이룰수 있음.

1단계만 확실히 답할수 있어도 회사내 및 이직 시 경쟁력 보유. 2-3단계를 답할수 있다면 외부 사업도 가능.

자신만의 엣지, 실력, 무기가 없다면 직장생활 10년, 20년을 해도 회사내 필수불가결한 사람이 되기 어렵고 더더욱 회사를 떠나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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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님의 포스팅인데 글을 진짜 잘 쓰시고, 공감 능력이 정말 최고이심 ㄷ ㄷ
KBS 뉴스9 주말 앵커 이재석님이 퇴사하셨네요. 어린이합창단을 관리하는 부서로 발령나셨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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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정식 퇴사'가 되었군요.

퇴사 결정 소식은 이미 보도로 나온 바 있지만, 그동안 밀린 휴가를 적잖이 썼습니다. 법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개인 명의로 바꾸고, 노트북을 반납하고, 이제 정말 '무소속'이 되었습니다.

앵커석에 있을 때는 가급적 SNS를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취재 용도'와 '담론 학습' 차원으로만 이른바 '눈팅'을 해왔지만 이제는 소통 창구를 하나 열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만 19년이었고, 2년 6개월이었더군요.

보도본부에 입사해 취재, 보도, 방송에 몰입해 살아온 시간이 19년이었고, 주말 9시뉴스 속 인터뷰 코너인 '뉴스를 만나다'와 '사사건건'에서 '꼬치꼬치'(?) 인터뷰한 시간이 그 가운데 2년 반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때로는 '오늘 너무 공격적이었나' 싶기도 했고, 때로는 '오늘 더욱더 공격적이었어야 했는데' 싶기도 했습니다. 사후적 아쉬움이 늘 자동적으로 뒤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앵커로서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랄까.

대략적으로는 많이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KBS의 현 상황을 구구절절 비판적으로 적는 것이 '아직은' 뭔가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뜬금없이 어린이합창단을 관리하는 부서에 발령을 받고는 '당신, 이 치욕을 감내할 수 있겠어?'라고 무언의 비아냥을 건네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개인적 반발 심리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최근 일련의 상황에 괴로워할 동료들이 거기에 적잖이 남아있는데, 이미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간 사람이 울타리 안의 사정을 너무 세세하게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도 뭔가 '오버' 같다는 생각.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한 마디만 꼬집어보자면, 지금 KBS에선 어떤 최소한의 절차적 합리성이나 절제의 미덕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드'만 있고 '슈퍼에고'가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랄까. 어쩌면 이것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계 전반에서 벌어지는 퇴행에서도 마찬가지로 목도할 수 있는 풍경인지도 모릅니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수많은 정치인들, 전문가들, 사건 당사자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아무래도 박정훈 대령입니다. 그가 임했던 유일한 인터뷰가 바로 8월 11일 '사사건건'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그 30분짜리 문답이었지요.

그를 인터뷰하면서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군인'이라는 사전적 개념을 눈앞에 '실물화'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 사람이지 않을까.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박 대령의 건투를 빕니다.
LA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약 9,240억 원)의 계약을 맺은 오타니 쇼헤이.

MLB뿐만 아니라 미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고의 연봉.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오타니가 어떤 평가를 받는 선수인지 잘 입증.

10년간 총 7억 달러이니 매년 7,000만 달러(약 924억 원)의 연봉을 받는 셈.

그런데 다저스에서 오타니가 실제 수령할 연봉은 불과 200만 달러(약 26억 원)뿐.

LA 에인절스에서 2023시즌에 받은 연봉은 3,000만 달러(395억 원)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연봉을 받는다는 것인데 무슨 셈법이 이런가?

오타니와 LA다저스 구단이 합의한 결과임.

양측은 10년간 매년 200만 달러씩 연봉을 지급하고 나머지 6억 8,000만 달러는 10년 계약 종료 후, 2034년부터 2043년까지 무이자로 지급하는 것에 합의

이처럼 연봉을 나중에 지급하는 것을 디퍼(지급 유예)라고 하는데 MLB에서는 흔한 일임.

그런데 오타니의 계약이 화제가 된 것은 나중에 받는 비율(%) 때문.

보통 전체 연봉의 10~20% 수준의 디퍼 계약을 함. 아무리 많아도 50%를 넘지 않음.

오타니의 경우 97%를 LA다저스와의 계약이 끝난 후에 받겠다는 것임.

그 이유는 바로 MLB 우승에 대한 갈망 때문. LA 에인절스 시절에는 한 번도 포스트 시즌에 가보지 못했음.

자신의 연봉에 대한 구단의 재정적 부담을 대폭 덜어줘서 우수한 선수를 확보할 실탄을 준비하도록 하려는 것.

당장 내년 시즌에는 올해 한 팔꿈치 수술 때문에 투타 겸업이 아니라 타자로만 나서야 함. 구단에 실탄이 넉넉하면 확실한 선발 투수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음.

인상적인 것은 이 디퍼 조항을 계약서에 넣자고 먼저 제안한 것이 오타니라는 사실임.

심지어 이번에 구단이 아낀 돈을 (엉뚱한 데 쓰지 말고) 팀 전력을 강화하는 데 쓸 것을 약속하고 이행을 보장하는 문구를 계약서에 넣어달라고 요구함.

여기까지만 보면 야구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선수구나 하면서 감탄하게 될 텐데 다른 한편으로 매우 현실적인 결정이기도 함.

MLB 평균연봉은 약 490만 달러(2023년). 그 반도 안 되는 200만 달러의 연봉은 사실 오타니에게 전혀 문제가 안 됨.

그간 광고, 마케팅 등으로 얻는 야구 외적인 수입이 연평균 3,500만 달러(461억원)에 달했음.

또한 LA다저스에서 고액의 주급을 받으면 주세(13.3%)가 가장 높은 캘리포니아주라서 고액의 세금을 내야 함.

LA다저스와의 계약 기간 종료 후, 세금이 가장 싼 주로 가서 살면 상당한 금액을 절세할 수 있게 됨. 믈론 이런 잔머리는 언론의 주장일뿐 오타니가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님.

돈 문제를 떠나서 (나도 이런 글을 올리고 있지만) 이번 디퍼 계약으로 '정말 우승에 진심인 오타니'라는 마케팅 효과를 만들어 낼 것임. 이 또한 광고비 대폭 상승이라는 금전적 이익으로 이어질 전망.
[전략적으로,...테무 약진의 비밀]

간만에 감동적인 비즈모델을 봐서 글을 남깁니다.

핀둬둬의 테무(TEMU)와 알리바바의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유통시장 진출이 한국을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알리는 "판매자단결, 못팔물건은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핀둬둬는 '구매자 단결, 못살물건은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실 알리바바보다는 테무의 비즈니스모델과 확장이 더 혁신적이게 보입니다.

테무는 '싸게' 그리고 'AII 위탁모델'로 중국 기업의 글로벌 확장을 돕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을 도와주는 국내 관공서나 단체들이 잘 벤치마킹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알리바바가 플랫폼에 상점들이 입점해서 물건을 파는 모델이라면, 테무의 기준은 영업점이 아니라, 제품 기준입니다.

즉, 꿀벌마우스가 있다면, 이 꿀벌마우스를 생산하는 A,B,C,D... 공장을 경쟁을 붙여서 가장 싸게 가져오는 공장의 물건을 받는거죠.
중간상인의 존재는 없어집니다.
그럼에도 공장들이 가격을 내려서 테무에 가져다주는 이유는 여전히 테무가 유럽, 아시로 판매해서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미래를 보기 때문이죠.
즉, 그동안 중간상인들이 가졌던 가격경정권과 운영권을 테무가 가져가면서, 소비자에게 그 이익을 주는 겁니다.

테무의 AII위탁모델은 총 4단계입니다. 정말 간단하게 물건을 팔 수 있습니다.

1. 자신의 신분증이나 사업자등록증으로 테무에 매장을 오픈할 것
2. 온라인스토어에 5~10개의 이미지와 정보를 넣어 상품을 게시할 것. 단 이때 중국어를 쓰지않고 AII영어로...
3. 테무의 인공지능과 오픈 기업간의 가격결정. 이게 재미있는데, 매장에서 해당 상품들의 가격을 제안하면, 테무의 알고리즘이 다시 당신에게 가격을 역제안하고,
매장이 테무인공지능의 가격제안을 받아들여야 매장 오픈이 가능. 인공지능은 총 3번의 기회를 주는데 3번안에 가격이 결정되어야 한다.
가격 결정권은 사실 테무에 있고, 일반적으로는 동일한 제품의 1688도매가격의 1.2배를 초과할 수없다는 기준에서 시작합니다.
4. 가격이 결정되면 테무 바이어가 상품사진을 검토해 OK가 되면 제품을 준비하면 됩니다.

이후 마케팅과 유통, 판매와 해외배송은 다 테무가 책임집니다. 그래서 테무에 입점한 기업은 가격만 잘 맞추고, 상품 사진을 잘 만들면끝!

테무는 판매에서 중국 핀둬둬의 스타일을 계속 유지합니다. TEMU라는 이름은 'Team Up, Price Down'의 약자죠. 즉, 뭉쳐서 가격을 낮추는 공동구매.
우리나라에서 하는 공동구매처럼 단순하지 않고, 여러 이벤트를 만들어 정말 재미있고, 싸게 ,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정말 편하게...

테무가 유럽에 상륙했을때 테무는 친구 5명을 데리고 오면 20만달러의 현금을 나눠지급하는 게임을 시작했죠. 유럽이나 미국의 서민들은 돈이 없어도 친구는 있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기하급수적으로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틱톡과 연계해서 댄스 이어추기 등등 이벤트로 순식간에 가입자를 모았습니다.

새로운 사용자가 등록을 하면 테무는 유아복, 시계, 안경을 1센트가 할 수 있고, 심지어 공짜로 살수 있는 제품도 지속적으로 추천해줍니다.
공짜로 상품을 구매하는 이벤트는 핀둬둬의 상징같은거죠.

암튼, 상거래는 심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략적이어야 합니다.
너무 단순하게 좋은 물건이 있어, 큰 플랫폼에 올리면 팔린다라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전략적으로' 좋은물건을 큰 플랫폼에 올려야 삽니다!
하버드대 졸업생이 30주년 동문회에 다녀와서 깨달은 것들!

1. 인생을 정확히 계획대로 살아낸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을 짜도 ‘예정없이 찾아오는’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2. 직업에서는 선생님이나 의사가 된 친구들이 대체로 행복해 보였다.

3. 변호사들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거나 다른 직업을 찾고 싶어 했다. 다만, 로스쿨 교수가 된 친구들은 대체로 직업에 만족해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무언가 비결이 있는 것 같다!)

4. 은행이나 펀드매니저 등 금융권에서 일한 친구들은 모은 재산을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할 거라고 말했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친구도 있었고,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아직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하루빨리 직종을 바꾸고 싶어 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꿈꾸는 분야는 예술 쪽이었다.

5. 예술 분야에서 일한 친구들은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큰 성공을 거둔 친구들도 있었다. 다만, 예술 분야에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6.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했다. 그런데 총동문회 직전에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재산이 많을수록 스스로 행복하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높았다.

7. 하버드 84학번 (입학 기준) 동문이 가장 채우고 싶은 욕구는 수면욕이었다. 잘 자는 일은 섹스나 돈보다 더 중요했다.

8.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 애창곡인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Burning Down the House”가 1학년 기숙사에 울려 퍼졌는데, 다들 35년 전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9. 신입생 때는 가장 많이 부끄러움을 타며 잘 나서지 않던 친구들이 신기하게도 동창회 간부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번 동문회를 조직하고 성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10. 이혼한 친구들은 대체로 이혼한 뒤의 삶에 만족해했다.

11. 그러나 원치 않은 이혼을 한 친구들은 이혼한 뒤 삶이 훨씬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12.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친구들은 결혼 후 어느 시점에 부부 관계가 성숙한 관계로 접어드는 계기나 전환점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친구는 내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상담을 받던 중에 답답한 마음을 담아 “나도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로 아내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건 남편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며, 그 부족한 점이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반대도 마찬가지!)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부대끼는 부부는 종종 이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13. 거의 모든 친구들이 자기가 젊었을 때 특히 얼마나 많은 것을 사사건건 비판했는지 생각하면 놀랍도록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14. 어느덧 쉰을 넘은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자주, 많이 했다. 동창회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가장 가깝고 친한 이에게만 아껴서 쓸 수 있게 쟁여놓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낌없이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15. 84학번 동문 가운데는 하원의원(Jim Himes)도 있고, 토니어워드를 받은 뮤지컬 감독이자 연출가(Diane Paulus)도 있으며, 우주에 다녀온 동문(Stephanie Wilson)도 있었다. 그런데 직업이나 성취와 관계없이 파티나 강연, 토론에서 하게 되는 말과 찾게 되는 가치는 대체로 보편적인 가치로 수렴하는 것 같았다. 사랑, 안식, 지적 자극, 훌륭한 리더십, 지속가능한 환경, 우정, 안정 같은 것들 말이다.

16.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이들은 그 결정을 잘한 일이라며 만족해했다. 일부러 자녀를 낳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반대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지 않을 것을 후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17. 첫 신입생 기숙사 룸메이트와 술집에 가서 같이 한잔하는 일은 졸업하고 30년이 지나서 하니 훨씬 더 재밌었다.

18. 가능하다면 호텔에서 자는 것보다 오랜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훨씬 낫다. 물론 새로 결혼하거나 같이 살 사람을 찾는 경우, 아니면 하룻밤 섹스를 즐길 파트너를 찾을 때는 집보다 호텔이 낫다.

19. 배우자가 있는 친구들도 대부분 동문회에 혼자 왔다.

20. 무릎, 엉덩이, 어깨가 성한 친구를 찾기 어려웠다.

21. 얼굴에 나타난 혈색만 봐도 지난 30년 동안 누가 술을 많이 마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22. 외모 면에서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대체로 준수했다.

23. 소득이나 직장에서의 직책, 승진 면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대체로 성과가 좋았다. (믿기 어렵지만!)

24.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우리의 삶에 꽤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특히, 제대로 된 보육 시설이 없고,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사실상 전무하던 시절,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쪽은 대부분 엄마였다.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5. 하버드 메모리얼 교회의 종이 27번 울렸다. 1988년 졸업생 가운데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27명을 기리는 의미였다. 숙연해진 우리는 앞으로 30년 동안 타종해야 할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리라는 숙명에 대해 생각했다.

26. 학부 시절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친구들이 추도식에서 자주 부르던 노래는 졸업한 뒤 한 번 모여 연습한 적이 없어도 마치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던 것처럼 합이 척척 맞았다. 심지어 그사이 곡이 편곡돼 예전에 부르던 노래와 달랐는 데도 말이다.

27. 쉰이 넘으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무 늦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았다. 1학년 때 기숙사 방짝 한 명은 1984년에 내가 했다는, 나는 기억도 안 나는 어떤 일을 이야기하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한 친구는 5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는 하버드 동문 인명록에서 내가 한 번은 병원 응급실에 갈 때 우버 합승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며, 다음번에는 구급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자기가 돈을 내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려는 친구를 향해 나는 웃으면서 당분간 응급실 갈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말만이라도 고맙다고 했다.

28. 자식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들도 있었다. 그 친구가 해준 말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하버드 15학번으로 입학했다가 지난해 여름 숨진 딸의 장례식에 상주로 선 엄마가 내 동문이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가 미처 꽃피우지 못하고 살지 못한 나날들에 슬퍼하지 않을 거야. 대신 우리 아이가 누구보다도 눈부시고 찬란하게 살아낸 21년을 기억하고 감사할 거야!”

29.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에 두려워한 적이 있는 이도 있고, 여전히 그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이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이 동문회에서 30년 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장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친구 한 명은 건강 관련 회사를 경영하다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며 얼굴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치료가 잘 돼 동문회에 온 친구를 본 나는 반가운 마음에 “우리 이렇게 만났네!”라고 격하게 인사를 건넸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우리는 계속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들썩이며 서로를 향한 반가움을 계속되는 포옹과 따뜻한 웃음으로 표현했다. 곧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지겠지만, 이렇게 함께 있기에 그 또한 치러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0. 사랑만으로 모든 걸 치유하고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사랑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됐다.”

*원문: 애틀란틱 (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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